임레 케르테스가 오래 전에 쓴 "운명"이라는 책의 명대목이다.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있지 않을 것이다. 운명이 존재한다면,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 자신이 곧 나 자신이 운명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우연의 연속이고, 숙명적으로 다가오는 운명의 여신의 손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에겐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어쩌면 맞는 말일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과 일상이 운명의 여신이 건내는 손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내딛는 자신의 발돋움이기에,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길을 만들어가고 우리가 만들어놓은 족적을 따라 다른 이들의 발걸음이 다가오는 것이다. 결국 그러한 발걸음이 우리 뒤를 따라 어께를 살짝 건들였을 때,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우연이라고... 하늘의 뜻이라고... 거역할 수 없는 그 어떠한 힘의 논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들의 발자취를 따라온 것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이는 인간 본능의 심리에서 자신의 잘못이나 결점을 전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으려하는 자기 방어의 본능과 자신의 상황에 현실만을 직시하다보니, 자신의 그동안의 발걸음을 뒤돌아 볼 여유를 찾지 못하여, 외부의 영향력으로서 자신의 정신을 잃은 것이라 생각하며, 우선적으로 외부적 요인으로 자신의 과오를 돌리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 심리들 중에는 우리 스스로의 길을 막는 요소가 꾀 많이 존재한다. 위의 경우가 그런것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요소를 보자면, 간략히 지칭해서...
얄팍한 자존심(내세워야 할 때와 그렇지 않아야할 때를 모르는 무식한 자존심) - 이것은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가정환경이나, 주변 대인관계에 의하여 생기는 성격적 문제로서 흔히, 폼으로 인생을 살려하는 폼생폼사주의가 강하다.
단체활동과정에서 나를 보호하는 것이 결국 나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될 것이라는 짧은 상황 인식 - 대부분 긴박한 상황에 이르는 경우, 극도의 긴장에서 자신의 신변이나 이미지에 큰 위협을 느끼는 경우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는 인간 보호 본능의 2세대쯤(?)의 본능이라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경우 단체를 위해서 나를 희생할 각오를 갖는다면 그러한 각오를 모든 단체원이 갖는다면, 결코 그들의 희망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혼자 구차하게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팀으로의 구성원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은 결국 팀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팀 다음이 자신이라고 여길 때, 그 팀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고가 전체주의적 요소가 강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자체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그러한 팀적인 요소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넓게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반응 - 이것은 모든 인간이 갖는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얼마나 잘 컨트롤 하냐에 따라 이러한 본능적인 올가미에서 헤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자신의 과오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본능이 존재한다. 이는 자신의 이미지 및 신변에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위의 자기 보호 본능의 2세뻘 되는 요소로 추가적으로 볼 수 있다. 이해가 안되는가?
예를 들면, 학교에서 놀다가 누군가 유리창을 깼다. 이는 일을 벌인 자신과 같이 놀던 친구 몇 뿐이 모른다. 그리고 이어서 수리할 수위아저씨도 물론 아시겠지만, 수위 아저씨는 자신의 본연의 의무 즉, 수리에만 전념하기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선 이 해결을 선생님 모르게 할 수 있다면, 나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친구들이야 어차피 입 다물어 주겠고, 물론 그로 인해서 내가 한턱 쏴야할 지도 모르지만(이때는 계산적인 사고도 사고도, 들어간다. 소비 금액이 자신의 보호에 부합할 정도로 한정된다는 이야기다.) 여하튼 꾸중을 들어가면서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미지 자체를 깎는 일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면,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렇게 일을 조용히 끝낼 경향이 많다.
물론, 나도 이러한 상황에 와 닿는다면 조금 생각이 깊어질 것이다.
우선 상황에서 피를 본 것이 아니니까, 유리만 갈아 끼우는 일이 결코 티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선생님 몰래 바꾸는 것은 쥐도 새도 모르게 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렇다면 나 스스로가 다행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이러한 상황을 이실직고 하더라도 나에게 큰 피해가 없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국 수석하던 놈이 유리창 하나 깼다고 선생님이 꾸중할 일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다. 물론, 이것은 옳지 않는 편파적인 처사이나... 내가 지금까지 학교생활을 해온 바로는 그렇다. 우선 모든 선생은 인간이기에 자신이 애착이 가는 학생들에게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고... 유리 깬 사건이 조용히 종결될 수 있다면, 결국 그렇게 하는게 선생님 입장에서도 쉬울 것이다. 전적으로 그 학생의 아주 극히 드문 실수 이므로 구지 꾸짖을 필요까지는 없다는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당사자도 나름대로 잘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해결을 요청한다면이다.
그러나, 매일 같이 일을 벌이는 학생이 그렇게 했다면...
이건 말을 안해도 알것이다. 너가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인간적인 비하가 쏟아지기 십상이다. 모든 선생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음... 내가 다시 읽어보니... 윗 내용이 조금 주관적이고 한정적인 조건에서의 예라고 생각되서 보편성과 객관성을 잃은 예이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 든다.
지우려다가, 이런 잘못된 판단을 남겨두어서 나중에 읽으면서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상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냥 남기기로 했다.
여하튼 예는 적절하지 못했으나, 대부분이 알다시피 인간의 본능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이 우리의 자신감과 진취적인 발상을 억제하고 창의적 사고를 방해한다.
곧,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는 모든 일들이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결코 운이 아니다. 결코 하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토종비결은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반론이 있을 것이다.
나는 점을 재미로 보면서도 약간은 믿는 편이라고 말하겠다.
왜냐, 이것은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경향을 분석해놓은 일종의 인간별 특성 데이터베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근거가 생년월일이라는 점에서 거의 객관성을 잃은 것이지만... 여하튼 대부분 그 생년월일에 태어난 사람의 생활이 그러했다는 분석이 쌓이고 쌓여서... 오랜 세월의 여력이 그대로 담겨있는 상태에서 현대적인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여 정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갖고 있는 점에 대한 여러 관점 중에서 하나일 뿐이다. 내가 꼭 그렇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이해해야한다.
여하튼 그렇기에 그것이 운명이라고 보기보다는,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우주의 진행원리에 맞춰서 편성해보았을 때이고, 당신은 과거의 당신과 비슷하게 인생을 걸어간 사람들들과 같은 날짜에 태어난 것이오. 그렇기에 당신도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요소가 비슷한게 여려개 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우연히 우리는 그러한 요소가 맞을 때, 용한 점이라고 평가한다. ㅋㅋ
여하튼 각설하고, 그것은 결코 운명이 아니다. 과거에 같은 일시에 태어난 사람들이 운명을 개척하는 과정의 공통적인 부분들을 제시하다보니, 우리 스스로가 운명을 개척하는 스타일도 비슷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지만....
여하튼, 운명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자유를 믿는 것은 별로 유익한 것이 아니다.
사회는 지켜야 할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자유에 반하는 일이다.
흔히 윤리에서 말하는 최소한의 법, 즉 도덕을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를 지속저긍로 보존해준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러한 도덕도 나라별로 천차만별이라는 점에서 결코 절대적 가치를 갖지 못한다.
결국 우리가 어디에서 살든, 어느 시대에 살든, 누구와 함께 살든... 자유가 아닌 그 사회에 그 집단에 유익한 방향을 위해서 어느정도 자유를 감수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스스로가 운명을 개척해 나갈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고, 리더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을 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우리가 뜻하는대로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고, 유도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시간을 운용하는 것을 덤으로 얻는 지배권을 갖게 될 수 있다.
그게 인간 승리고 그렇게 될 때, 비로소 단체의 발전이 가능해 진다.
현대인들의 마음 속에는 허영이 가득하다. 너무도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잃기 쉬운 사회이기에 희망과 자신감과 의지력을 상실하기 쉽다.
그러한 사회는 오래가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게 바로 운명에 이끌리는 것이고, 시간이 쪼들리는 것이고, 자신이 세상에서 소외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발자국을 뒤돌아 볼 틈도 없이... 자신의 영혼이 말라가는 것을 가슴아프게 느끼는 것이다...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있지 않을 것이다. 운명이 존재한다면,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 자신이 곧 나 자신이 운명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우연의 연속이고, 숙명적으로 다가오는 운명의 여신의 손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에겐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어쩌면 맞는 말일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과 일상이 운명의 여신이 건내는 손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내딛는 자신의 발돋움이기에,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길을 만들어가고 우리가 만들어놓은 족적을 따라 다른 이들의 발걸음이 다가오는 것이다. 결국 그러한 발걸음이 우리 뒤를 따라 어께를 살짝 건들였을 때,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우연이라고... 하늘의 뜻이라고... 거역할 수 없는 그 어떠한 힘의 논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들의 발자취를 따라온 것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이는 인간 본능의 심리에서 자신의 잘못이나 결점을 전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으려하는 자기 방어의 본능과 자신의 상황에 현실만을 직시하다보니, 자신의 그동안의 발걸음을 뒤돌아 볼 여유를 찾지 못하여, 외부의 영향력으로서 자신의 정신을 잃은 것이라 생각하며, 우선적으로 외부적 요인으로 자신의 과오를 돌리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 심리들 중에는 우리 스스로의 길을 막는 요소가 꾀 많이 존재한다. 위의 경우가 그런것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요소를 보자면, 간략히 지칭해서...
얄팍한 자존심(내세워야 할 때와 그렇지 않아야할 때를 모르는 무식한 자존심) - 이것은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가정환경이나, 주변 대인관계에 의하여 생기는 성격적 문제로서 흔히, 폼으로 인생을 살려하는 폼생폼사주의가 강하다.
단체활동과정에서 나를 보호하는 것이 결국 나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될 것이라는 짧은 상황 인식 - 대부분 긴박한 상황에 이르는 경우, 극도의 긴장에서 자신의 신변이나 이미지에 큰 위협을 느끼는 경우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는 인간 보호 본능의 2세대쯤(?)의 본능이라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경우 단체를 위해서 나를 희생할 각오를 갖는다면 그러한 각오를 모든 단체원이 갖는다면, 결코 그들의 희망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혼자 구차하게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팀으로의 구성원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은 결국 팀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팀 다음이 자신이라고 여길 때, 그 팀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고가 전체주의적 요소가 강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자체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그러한 팀적인 요소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넓게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반응 - 이것은 모든 인간이 갖는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얼마나 잘 컨트롤 하냐에 따라 이러한 본능적인 올가미에서 헤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자신의 과오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본능이 존재한다. 이는 자신의 이미지 및 신변에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위의 자기 보호 본능의 2세뻘 되는 요소로 추가적으로 볼 수 있다. 이해가 안되는가?
예를 들면, 학교에서 놀다가 누군가 유리창을 깼다. 이는 일을 벌인 자신과 같이 놀던 친구 몇 뿐이 모른다. 그리고 이어서 수리할 수위아저씨도 물론 아시겠지만, 수위 아저씨는 자신의 본연의 의무 즉, 수리에만 전념하기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선 이 해결을 선생님 모르게 할 수 있다면, 나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친구들이야 어차피 입 다물어 주겠고, 물론 그로 인해서 내가 한턱 쏴야할 지도 모르지만(이때는 계산적인 사고도 사고도, 들어간다. 소비 금액이 자신의 보호에 부합할 정도로 한정된다는 이야기다.) 여하튼 꾸중을 들어가면서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미지 자체를 깎는 일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면,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렇게 일을 조용히 끝낼 경향이 많다.
물론, 나도 이러한 상황에 와 닿는다면 조금 생각이 깊어질 것이다.
우선 상황에서 피를 본 것이 아니니까, 유리만 갈아 끼우는 일이 결코 티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선생님 몰래 바꾸는 것은 쥐도 새도 모르게 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렇다면 나 스스로가 다행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이러한 상황을 이실직고 하더라도 나에게 큰 피해가 없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국 수석하던 놈이 유리창 하나 깼다고 선생님이 꾸중할 일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다. 물론, 이것은 옳지 않는 편파적인 처사이나... 내가 지금까지 학교생활을 해온 바로는 그렇다. 우선 모든 선생은 인간이기에 자신이 애착이 가는 학생들에게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고... 유리 깬 사건이 조용히 종결될 수 있다면, 결국 그렇게 하는게 선생님 입장에서도 쉬울 것이다. 전적으로 그 학생의 아주 극히 드문 실수 이므로 구지 꾸짖을 필요까지는 없다는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당사자도 나름대로 잘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해결을 요청한다면이다.
그러나, 매일 같이 일을 벌이는 학생이 그렇게 했다면...
이건 말을 안해도 알것이다. 너가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인간적인 비하가 쏟아지기 십상이다. 모든 선생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음... 내가 다시 읽어보니... 윗 내용이 조금 주관적이고 한정적인 조건에서의 예라고 생각되서 보편성과 객관성을 잃은 예이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 든다.
지우려다가, 이런 잘못된 판단을 남겨두어서 나중에 읽으면서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상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냥 남기기로 했다.
여하튼 예는 적절하지 못했으나, 대부분이 알다시피 인간의 본능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이 우리의 자신감과 진취적인 발상을 억제하고 창의적 사고를 방해한다.
곧,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는 모든 일들이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결코 운이 아니다. 결코 하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토종비결은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반론이 있을 것이다.
나는 점을 재미로 보면서도 약간은 믿는 편이라고 말하겠다.
왜냐, 이것은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경향을 분석해놓은 일종의 인간별 특성 데이터베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근거가 생년월일이라는 점에서 거의 객관성을 잃은 것이지만... 여하튼 대부분 그 생년월일에 태어난 사람의 생활이 그러했다는 분석이 쌓이고 쌓여서... 오랜 세월의 여력이 그대로 담겨있는 상태에서 현대적인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여 정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갖고 있는 점에 대한 여러 관점 중에서 하나일 뿐이다. 내가 꼭 그렇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이해해야한다.
여하튼 그렇기에 그것이 운명이라고 보기보다는,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우주의 진행원리에 맞춰서 편성해보았을 때이고, 당신은 과거의 당신과 비슷하게 인생을 걸어간 사람들들과 같은 날짜에 태어난 것이오. 그렇기에 당신도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요소가 비슷한게 여려개 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우연히 우리는 그러한 요소가 맞을 때, 용한 점이라고 평가한다. ㅋㅋ
여하튼 각설하고, 그것은 결코 운명이 아니다. 과거에 같은 일시에 태어난 사람들이 운명을 개척하는 과정의 공통적인 부분들을 제시하다보니, 우리 스스로가 운명을 개척하는 스타일도 비슷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지만....
여하튼, 운명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자유를 믿는 것은 별로 유익한 것이 아니다.
사회는 지켜야 할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자유에 반하는 일이다.
흔히 윤리에서 말하는 최소한의 법, 즉 도덕을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를 지속저긍로 보존해준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러한 도덕도 나라별로 천차만별이라는 점에서 결코 절대적 가치를 갖지 못한다.
결국 우리가 어디에서 살든, 어느 시대에 살든, 누구와 함께 살든... 자유가 아닌 그 사회에 그 집단에 유익한 방향을 위해서 어느정도 자유를 감수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스스로가 운명을 개척해 나갈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고, 리더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을 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우리가 뜻하는대로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고, 유도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시간을 운용하는 것을 덤으로 얻는 지배권을 갖게 될 수 있다.
그게 인간 승리고 그렇게 될 때, 비로소 단체의 발전이 가능해 진다.
현대인들의 마음 속에는 허영이 가득하다. 너무도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잃기 쉬운 사회이기에 희망과 자신감과 의지력을 상실하기 쉽다.
그러한 사회는 오래가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게 바로 운명에 이끌리는 것이고, 시간이 쪼들리는 것이고, 자신이 세상에서 소외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발자국을 뒤돌아 볼 틈도 없이... 자신의 영혼이 말라가는 것을 가슴아프게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