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무너졌다. 예상했던 대로 이젠 저번 보다 더 지친다. 그리고 이젠 그만 두고 싶어진다.
나의 카르마가... 업보가 이리도 강력하다는 것을 난 이렇게 또 실감한다. 쉽게 보지 않았지만, 쉽게 생각했던 거 같다.
아직 올해 말까진 2개월 정도 아직 남아있다. 바꾸자. 바꾸자. 바꾸자. 변하자.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야...
조금만 더 솔직하게 조금 더 강직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자. 버릴 건 과감히 버리고, 쥘 건 꽉 쥐고...
오늘 아침 "Journey - Era"를 들었다. 익숙한 곡이었는데, 정처 없이 부유하는 내 마음을 차분히 내려앉혀주었다.
호건아, 현재를 살자. 넌 지금 삶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 지우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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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알게 모르게 나의 불성실함이 나와 함께하고자 했던 이들에게 불필요한 실망을 안겨주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내가 더 미워지려 한다. 그러고 싶었던 게 아닌데, 결국 그러고 있다. 못난 짓... 불완전한 나의 모습을 여실히 쳐다보며...
나는 할 말이 없어진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더 가까워지고 싶은데... 괜히... 할 말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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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껴진다.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 무엇이 집착하고 있는지... 상처 받을 자유를 스스로 막고 있다.
좋은 이미지를 좋은 인상을 좋은 성격을 만드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지금의 나를 바꾸려는 노력이 나 스스로를 위함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지는 나를 위함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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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 (早春)
내게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면 계절이 바뀌는 것이요, 희망이 있다면 봄을 다시 보는 것이다. 내게 효과가 있는 다만 하나의 강장제는 따스한 햇빛이요, '토닉'이 되는 것은 흙냄새다. 이제는 얼었던 혈관이 풀리고 흐린 피가 진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젊음' 이 초록빛 '슈트케이스' 를 마차에 싣고 넓어 보이는 길로 다시 올 것만 같다.
어제 나는 외투를 벗어 버리고 거리에 나갔다가 감기가 들었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걸음걸이에 탄력이 오는 것을 느꼈다. 충분한 보상이다. 어려서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려 보기도 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겨울이 되어 외투를 입는다는 것은 기쁜일이다. 봄이 되어 외투를 벗는다는 것은 더 기쁜 일이다. 아무리 포근하고 보드라운 것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십년이나 입어 정이 든 외투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말이 '조춘'이라면 가장 싫어하는 말은 '춘궁(春窮)'이다. '빈한(貧寒)' 이란 말은 냉랭한 날씨같이 오히려 좋은 데가 있다. 나는 영어로 '빈한'이 아니요, '한빈'이라는 말을 안다. 그러나 '춘궁'이란 말은 없는 듯하다.
'봄이 오면 비둘기 목털에 윤이 나고' 봄이 오면 젊은이는 가난을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스물여섯 된 무급조교(無給助敎)는 약혼을 한다. 종달새는 조금 먹고도 창공을 솟아오르니, 모두들 햇빛 속에 고생을 잊어보자. 말아 두엇던 화폭을 다시 펴 나가듯이 하루하루가 봄을 전개 시키려는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