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문제들이 우후죽순처럼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역시나 나의 삶은 드라마틱한 것에서 멀어질 수 없나보다,
하긴 누구의 삶이 소설이 아니겠는가? 다 들어보고 열어보면, 파란만장한 것을...
나 자신을 바꾸기 힘들다는 것을 몇 번이고 깨달아가는 하루하루.
여전히 나는 넘어진다. 부끄럽게도 똑같은 자리에서 또 다시 넘어진다.
그러면서 너무나 제대로 선명하게 깨닫는다.
내가 남에게 요구하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것일지라도,
말하는 습관, 문장의 표현방식과 같은 그 사람에게 체화된 다시 말해 그 사람의 특징인 것들과 관련되 것일수록...
그러한 요구와 기대가 얼마나 비인격적이고 미숙한 태도인지를 곱씹고 또 곱씹게 된다.
나는 여전히 모른다. 어떠한 길이 '인자무적'이 되어가는 길인지...
내가 의도적으로 주변에 적을 만드는 것을 피하는 것이 아님에도,
누군가는 나의 태도를 보며 내가 적을 만드는 것을 피하려다가 되려 선량한 사람들을 더 괴롭게 한다고들 한다.
'선량하다...'라... 무엇을 근거로 그들이 선량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상대적 다수가 선량하다고 보면, 그게 곧 선량한 것이고 옳은 것인가?
어렵다. 어렵지만, 그래서 나에겐 큰 배움이다. 아직 답은 선명하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 답을 풀기 위한 실마리를 고민한다.
진심을 다해보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곳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지
누가 노젓기를 잘하는지를 평가하고자 항해를 멈춰 세움이 아님을 기억하자.
논어(論語)에는 이런 말이 있다. "폭력으로는 가장 평범한 사람의 뜻도 굴복시킬 수 없다." 물론, 협박이나 권위를 내세워 상대를 주눅 들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죄과는 반드시 돌아오는 법이다. 내가 힘을 잃고 곤란한 지경이 되었을 때 상대는 가차 없이 나에게 등을 돌리고 침을 뱉을 테니까 말이다. 진정한 사람대함은 항상 사랑이어야 한다. 공자는 이를 '인(仁)'이라고 표현한다. '인자하신 분'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처럼, 항상 상대를 배려하고 감싸는 자세로 상대 를 대하라는 뜻이다. 나아가 내가 싫어하는 일은 상대에게도 절대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 것이 '서(恕)'다. 이렇게 할 때 공자는 "나라든 집안에서는 서로 원망하는 마음 이 사라진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