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많은 도전자들은 계획과 함께 당당한 포부를 지니고 도전한다.
그 도전의 목표는 다양하겠지, 각종 대회, 세계 신기록, 기네스 북, 골든벨, 결혼, 시험합격 등등...
그런 것들도 하나의 조그마한 목표가 될 수 있지만, 그 조그마한 도전들에서도 실패는 허다하다.
누구나 실패와 실수는 밥먹는 듯이 한다. 위대한 세계 인물들도 실패나 실수로 인한 좌절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겪었다.
그런 사실을 우리는 알면서도 괄시하고 부끄러워한다.
당당할 필요가 있다. 고작 그 조그마한 목표들에게서 얻어지는 좌절에서도, 불만족스러운 결과에게서 정작 무너지고 비관하고... 자기 자신을 비하할 필요는 추호도 없는 것이다.
단지 반성하며 자신을 추스리고 다시 도전 할때는 느낀대로 보다 더 열정적으로 효과적으로 일을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사람이 지닌 지능이라는 것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실패한 자에 대한 자기 합리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코 실패가 수치스럽고 죄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비관적으로 받아들여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있는 그대로 성공과 실패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동등한 결과일 뿐이다. 단지 그 결과가 지닌 효용성면에서 어느것이 더 가치있는지, 실질적 이득이 있는지에서 그 일반적인 효용가치가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때론 좌절과 실패가 정작 작은 성공보다 더 큰 성공의 길을 열어주지 않았던가?
이것이 세상에서 일어난 수 많은 실패중에서 0.000001%에만 해당되는 일이라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어떠한 도전 속에서의 성공도 수많은 도전중에 0.000001%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닐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까지 작은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큰 도전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을 선택하고, 원하는 대로 가꾸는 것이다. 자신이 마음에 들때까지...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 때가 진정한, 성공이다. 일종의 자아실현과 같은 개념일 것이다.
나와의 싸움이 가장 큰 도전이다.
순간 순간에 우리는 내적인 자아의 갈등을 겪는다. 그 싸움을 말하는 것이다. 끝도 없다. 평생 죽는 순간에도 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싸운다. 결국 그 순간에 지면 도전은 끝나는 것이다.
다만 그 죽음의 도전 이전에 가장 큰 도전이 꿈을 이루는 것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수많은 도전이 따른다.
그 도전은 너무도 힘겨운 일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순한 게임의 도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왜냐 100% 자신의 책임이 전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을 A로 할 것인가 B로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내 머리에서 이루어지고, 그 결과를 몸으로 겪게된다.
그 싸움의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갖고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때론 그 전쟁에서 실패하거나 실수를 중간에 하게되어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것들을 직시해야한다.
그 큰 전쟁의 책임은 100%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 전쟁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강한 의지력을 바탕으로한 노력이겠다. 물론 그 노력이 효율적인 것이어야 더 큰 승리를 보장하겠지마는 결론적으로 노력만이 전쟁의 승리를 준다는 것이다.
의지력... 이것을 키우는 방법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까지 가보는 것이 가장 좋은 의지력 회복 방법인데... 물론 어떤 사람은 그 최악의 상황을 비관하고 자살을 택하여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우는 길을 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미 자신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사람이라 하겠다.
자신을 믿는 자라면, 분명 자신이 이래서는 안되다는 생각을 지니고 어떻게 하면 다시 재개할 것인가를 궁리할 것이다.
최악에 상황에서의 발악은 그 어떤 단계에서의 노력보다도 처절하고, 강렬하다.
죽음 앞에서의 사람이 살려는 필사적인 반항과 투지가 이것에 준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내일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라라는 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자세에서 큰 의지력이 생기는 것이다.
의지력만 조절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어떠한 전쟁에서도 뛰어난 지휘를 할 수 있다.
나도 이번 시험기간동안 나 자신이 참 많이 나태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일이 시험인데... 어제 시험결과는 이러했는데... 하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후회라는 것을 하고 있는 나를 느꼈다.
하하하...
나에 대한 자기 합리화인가... 여하튼 반성과 후회는 다르다.
후회를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볼 때면... 하염없이 부끄러움에 빠진다. 때때로 윤동주의 참회록이나 서시가 떠오르곤 한다.
그렇기에 나는 작은 부끄러움에 괴로워서 이렇게 한줄기 참회의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훗날에 다시 지금의 부끄러움을 또 떠올리겠지만...
흠...
나는 결과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나의 선택과 의지력이 약해진 것이 두려울 뿐이다. 다른 일을 행함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방학을 앞두고 나의 의지력 회복에 박차를 가하겠다. 그리고 나와의 전쟁으로 명작을 한편 찍어야겠다.
내일 시험이 끝나면 나에겐 큰 선물이 주어진다. 기쁘다...
생일 선물인가보다... 덕분에 이번 방학에는 행복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도전의 목표는 다양하겠지, 각종 대회, 세계 신기록, 기네스 북, 골든벨, 결혼, 시험합격 등등...
그런 것들도 하나의 조그마한 목표가 될 수 있지만, 그 조그마한 도전들에서도 실패는 허다하다.
누구나 실패와 실수는 밥먹는 듯이 한다. 위대한 세계 인물들도 실패나 실수로 인한 좌절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겪었다.
그런 사실을 우리는 알면서도 괄시하고 부끄러워한다.
당당할 필요가 있다. 고작 그 조그마한 목표들에게서 얻어지는 좌절에서도, 불만족스러운 결과에게서 정작 무너지고 비관하고... 자기 자신을 비하할 필요는 추호도 없는 것이다.
단지 반성하며 자신을 추스리고 다시 도전 할때는 느낀대로 보다 더 열정적으로 효과적으로 일을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사람이 지닌 지능이라는 것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실패한 자에 대한 자기 합리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코 실패가 수치스럽고 죄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비관적으로 받아들여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있는 그대로 성공과 실패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동등한 결과일 뿐이다. 단지 그 결과가 지닌 효용성면에서 어느것이 더 가치있는지, 실질적 이득이 있는지에서 그 일반적인 효용가치가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때론 좌절과 실패가 정작 작은 성공보다 더 큰 성공의 길을 열어주지 않았던가?
이것이 세상에서 일어난 수 많은 실패중에서 0.000001%에만 해당되는 일이라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어떠한 도전 속에서의 성공도 수많은 도전중에 0.000001%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닐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까지 작은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큰 도전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을 선택하고, 원하는 대로 가꾸는 것이다. 자신이 마음에 들때까지...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 때가 진정한, 성공이다. 일종의 자아실현과 같은 개념일 것이다.
나와의 싸움이 가장 큰 도전이다.
순간 순간에 우리는 내적인 자아의 갈등을 겪는다. 그 싸움을 말하는 것이다. 끝도 없다. 평생 죽는 순간에도 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싸운다. 결국 그 순간에 지면 도전은 끝나는 것이다.
다만 그 죽음의 도전 이전에 가장 큰 도전이 꿈을 이루는 것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수많은 도전이 따른다.
그 도전은 너무도 힘겨운 일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순한 게임의 도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왜냐 100% 자신의 책임이 전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을 A로 할 것인가 B로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내 머리에서 이루어지고, 그 결과를 몸으로 겪게된다.
그 싸움의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갖고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때론 그 전쟁에서 실패하거나 실수를 중간에 하게되어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것들을 직시해야한다.
그 큰 전쟁의 책임은 100%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 전쟁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강한 의지력을 바탕으로한 노력이겠다. 물론 그 노력이 효율적인 것이어야 더 큰 승리를 보장하겠지마는 결론적으로 노력만이 전쟁의 승리를 준다는 것이다.
의지력... 이것을 키우는 방법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까지 가보는 것이 가장 좋은 의지력 회복 방법인데... 물론 어떤 사람은 그 최악의 상황을 비관하고 자살을 택하여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우는 길을 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미 자신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사람이라 하겠다.
자신을 믿는 자라면, 분명 자신이 이래서는 안되다는 생각을 지니고 어떻게 하면 다시 재개할 것인가를 궁리할 것이다.
최악에 상황에서의 발악은 그 어떤 단계에서의 노력보다도 처절하고, 강렬하다.
죽음 앞에서의 사람이 살려는 필사적인 반항과 투지가 이것에 준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내일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라라는 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자세에서 큰 의지력이 생기는 것이다.
의지력만 조절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어떠한 전쟁에서도 뛰어난 지휘를 할 수 있다.
나도 이번 시험기간동안 나 자신이 참 많이 나태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일이 시험인데... 어제 시험결과는 이러했는데... 하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후회라는 것을 하고 있는 나를 느꼈다.
하하하...
나에 대한 자기 합리화인가... 여하튼 반성과 후회는 다르다.
후회를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볼 때면... 하염없이 부끄러움에 빠진다. 때때로 윤동주의 참회록이나 서시가 떠오르곤 한다.
그렇기에 나는 작은 부끄러움에 괴로워서 이렇게 한줄기 참회의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훗날에 다시 지금의 부끄러움을 또 떠올리겠지만...
흠...
나는 결과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나의 선택과 의지력이 약해진 것이 두려울 뿐이다. 다른 일을 행함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방학을 앞두고 나의 의지력 회복에 박차를 가하겠다. 그리고 나와의 전쟁으로 명작을 한편 찍어야겠다.
내일 시험이 끝나면 나에겐 큰 선물이 주어진다. 기쁘다...
생일 선물인가보다... 덕분에 이번 방학에는 행복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