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30 17:34

말 뿐이 아닌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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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뿐이 아닌 삶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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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 피천득


꽃은 좋은 선물이다. 장미, 백합, 히아신스, 카네이션, 나는 많은 꽃 중에서 카네이션을 골랐다. 그가 좋아하는 분홍 카네이션 다섯 송이와 아스파라거스 두 가지를 사 가지고 거리로 나왔다. 그는 향기가 너무 짙은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

첫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와 같이 웃는 낯으로, 가끔 하얀 케이프를 두른 양 종이에 싸인 꽃을 들여다보며 걸어갔다. 누가 나보고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나는 '우리 애기 백일날은 내일 모례^36^예요'라고 대답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무슨 소린지도 모르고 그저 웃고 지나갈 것이다.


선물은 뇌물이나 구제품같이 목적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다. 구태여 목적을 찾는다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선물은 포시아가 말하는 자애와 같이 주는 사람도 기쁘게 한다. 무엇을 줄까 미리부터

생각하는 기쁨, 상점에 가서 물건을 고르는 기쁨, 그리고 선물을 기뻐하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 인편이나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에는 받는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상상하여 보는 기쁨, 이런 가지가지의 기쁨을 생각할 때 그 물건이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선물을 받는 순간의 기쁨도 크지마는 선물을 푸는 순간의 기쁨이 있다. 이 기쁨을 길게 연장시키기 위하여 나는 언젠가 작은 브로치 하나를 싸고 또 싸서 상자에 넣고, 그 상자를 더 큰 상자에 넣고 그 상자를 또 더 큰 상자에 넣어 누구에게 준 적이 있다.


남에게 주는 물건들이 다 좋은 선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양담배를 피는 사람에게 양담배를 한 보루 주는 것은 돈으로 이삼천원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늘 진로 소주를 먹는 사람에게 조니워커 한 병은 선물이 되는 것이다. 백청한 항아리는 선물이 되어도 설탕 한 포대는 선물이 될 수 없다. 와이셔츠가 아니라 넥타이가 좋은 선물이 된다. 유럽에 갔다가 빠리에서 사온 넥타이라면 더욱 좋다. 촌 부인에게 광목 한 통이 비단보다 더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양단 저고리 한 감이 정말 선물이 되는 것이다.


내가 가난한 탓인지 일년에 한두 번 와이셔츠를 갖다 주는 사람들이 있다. 양말을 받는 때도 있다.


선물은 아름다운 물건이라야 한다. 진주 목걸이, 다이아반지, 댄스할 때 흔들릴 팔찌, 이런 사치품들도 좋은 선물이다.


그러나 선물은 뇌물이 아니므로 그 가치는 그 물건의 가격과 정비례되지 않는다. 값싼 물건, 값 없는 물건까지도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다.


나는 내금강에 갔다가 만폭동 단풍 한 잎을 선물로 노산에게 갖다준 일이 있다. 그는 단풍잎을 받고 아름다운 시조를 지어 발표하였었다. 내가 받은 선물 중에는 유치원 다닐 때 삐아트리스에게서 받은 붕어 과자 속에서 나온 납반지, 친구 한 분이 준 열쇠 하나, 한 학생이 갖다 준 이름 모를 산새의 깃, 무지개같이 영롱한 조가비, 이런 것들이 있다.


주인공의 이름은 잊었지만, 지중해 어떤 항구에 술 파는 여자가 있었다. 선부들이 항해를 하고 들어올 때면 선물을 갖다 주었다. 염주 목걸이, 조가비를 꿰어 만든 팔찌, 산호 반지, 그 선부들은 다음 번에 이 항구에 왔을 때, 그 여자가 자기가 갖다준 선물을 몸에 지니고 있지 않으면 매우 섭섭해 하였다. 그 여자는 앞으로는 꼭 가지고 있겠다고 달래 준다. 그러면 여자의 가슴에 머리를 박고 젊은 수부들은 울었다. 그리하여 마음 좋은 그 여자는 언제나 여러 개의 목걸이를 하고 여러 개의 팔찌를 하고 수많은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이었다.


벌써 십오년 전이다. 나의 친구는 자기가 가졌던 회중시계를 나에게 주었다. 나는 시계를 사지 못하던 형편이라 그가 시계가 준 것을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지 않았었다.


그 친구는 그후 얼마 아니 있다가 세상을 떠나고, 시계는 지금 내가 남에게서 받은 선물들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되었다.


시계는 줄은 끊어졌으나 살아서 잘 가고 있다. 우리 델라가 길 같은 머리라도 가졌다면 그것을 팔아서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 시계줄을 사다 줄 텐데, 이 여자도 남과 같이 퍼머를 하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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