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자체가 행복을 기대하게끔 하는 소스가 될 순 없다고 본다.
누군가를 앞지른들 그 앞엔 또 늘 새로운 경쟁상대가 존재하고, 그렇게 경쟁의 챗바퀴는 영원히 끝없이 또 돌아갈 것이다.
왜 우린 경쟁을 개념화하는가? 굳이 누군가를 라이벌로 인식하고자 하는가?
그게 꼭 필요한가? 내가 누구보다 남보다 더 잘해야만 하는가? 그게 행복의 근원인가? 우월의식이?
남과 자신의 존재의 차별화와 나 자신의 우월성은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고, 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업무 성과가 뛰어나고...
그런 관점에서의 경쟁과 우월의식 타당한가?
과연 온전히 나 스스로의 능력만이 그러한 성과를 만들었다고 자신하는가?
자신을 키운 환경과 능력을 발휘할 여건과 기회들이 순전히 자신의 노력에서 비롯되었고,
나보다 뒤처지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기회를 얻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면,
남과의 경쟁을 의식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삶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게으른 사회가 도태하고, 게으른 사람이 단명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없는 사회가 도태하고, 재미없이 사는 사람이 단명하는 것이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중요하는 것은ㅡ
일이 그 자체로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이 아무리 고되도, 스스로 좋아서 택한 사람은 고됨 자체엔 불평이 없다.
오히려 스스로의 부족함과 게으름에 부끄러워할 뿐...
몸을 가꾸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몸도 마음도 정신도 맑고 건강할 수 있는 것이지,
몸을 가꾸는 것을 억지스럽게 고집하는 사람은 몸은 좋아질지 몰라도 정신적으론 오히려 피폐해지기 십상이다.
남보다 더 멋진 인생을 꿈꾸는가?
왜 내 인생의 행복을 고민하면서 굳이 남을 끄집어 오는가?
나라면ㅡ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 동안 내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그럼, 지금의 난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러한 삶의 기회와 여유가 정말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감사한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련다.
누가 그렇게 말했다.
돈이 자유를 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돈을 충분히 버니까 공허하더라...
명예를 얻으면 자유로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명성을 얻게 되니 또 공허하더라...
남에게 베풀면 자유로워질 것이라 믿었더니, 베풀고 또 베풀어도 여전히 공허하더라...
이젠 우리가 왜 태어나서 어디서 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알고 싶다.
그 이유를 알면 내가 무엇을 해야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인지를 알 것 같다.
그에게 되묻고 싶다.
뭐가 그렇게 답답해서 스스로가 자유롭지 못하다며, 스스로를 보이지도 않는 감옥에 가두는가?
뭐가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가? 당신에게 자유는 무엇인가? 마음의 공허함이 채워지면 자유로운 것인가?
당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가? 당신이 꿈꾸는 것들을 얼마나 멋지게 이뤄낼 수 있는가?
그런 위치에서 그런 능력을 갖고 기회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평하는 것은ㅡ
겸손이 아니라, 교만이다. 돈, 명예, 자선 따위 안해도 우리 친구들은 행복하게 잘만 살더라...
마치 한마디 비둘기처럼 자유롭게!!! 그들의 삶을 함부로 매도하지 말라.
내 눈엔 당신은 그저 외롭고 안타까워 보일 뿐이다.
행복한 사람은 뭐라 말하지 않아도, 그의 얼굴에 행복함 가득하게 피어난다.
일에 대한 즐거움과 학구열이 넘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과 함께 일하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이 넘치는 연인을 바라보면, 바라보는 이들까지도 행복하게 사랑에 빠지고프게 아름답고 마냥 보기 좋다.
그런 자연스러운 끌림이 그게 곧 행복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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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매일경제신문의 경제월간지 '럭스멘' 6월호에 실린 제 글입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진정 행복해질 수 있을까. 바쁜 현대사회에서 행복해지는 길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몇몇 전문가들은 “경쟁이 우리의 영혼과 행복을 삼켜버리는 암적인 존재이다”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우리는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어한다”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삶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저자인 토드 부크홀츠는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을 ‘청산유수의 달변가인 행복 전도사’, ‘에덴주의자’로 부르며 그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리고 “날이 선 채 팽팽하게 긴장해 앞뒤 가리지 않는 경쟁이야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젊은 시절 맨해튼에서 고액연봉을 받으며 일하다 무미건조함을 느끼고 백악관의 경제 자문관으로 전직했다. 월급은 크게 줄었고 주말에도 바쁘게 일을 해야했지만 정신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 행복이란 월급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인정받는지, 자신이 스스로를 얼마나 뿌듯하게 여기는지에 비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세상에는 일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역설하는 책들로 넘쳐나는 것이 보였다. 자신이 바쁜 백악관 시절에 느꼈던 행복감을 평가절하하고,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은 마치 아무 생각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신세가 되려는 것으로 보는 세상의 풍토가 걱정스러웠다. 부크홀츠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이다. 저자는 행복이란 무조건 한 발 물러나 다라니를 암송하며 복식호흡을 한다고 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월든 호숫가를 찾아간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수도원의 모습을 한 샹그릴라(이상향)을 추구하기보다, 이 세상에 맞서 살아감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크홀츠는 왜 부유한 사람과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오래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의 답은 이렇다. 그들은 자기제어 능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치 클럽에서 비위를 맞추는 웨이터에 둘러싸여 있기보다, 스스로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기를 원한다는 얘기다. 결국 행복은 수입이 아니라 개인의 통제력에 많은 부분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우리는 일을 싫어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일은 생명을 연장시킨다. 게다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게으른 사회는 도태되고, 게으른 사람은 단명한다. 경쟁이 우리를 부추긴 결과, 우리 삶은 나아지며 행복을 성취할 기회도 그만큼 많아진다.” (164p) 부크홀츠는 테니스 스타인 안드레 아가시의 회고록 내용을 소개한다. 아가시는 자신이 테니스를 싫어했다고 고백했다. 테니스가 가장 외로운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지나친 경쟁과 과도한 일 때문에 불행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경쟁이 우리를 외톨이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 정신과 우정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경쟁심을 갖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 경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친구로 포용해 삶이라는 지난한 노동을 잘 헤쳐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역사가, 신학자, 식물학자들이 함께 모여 뗏목을 타고 티그리스강을 건너 큰 칼로 바빌론 밀림을 헤치고 나가 진짜 에덴을 찾아낸다 할지라도, 그곳에서 지고의 평안을 찾진 못할 것이다. 거기엔 포도나무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지치기를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부분을 잘라야할지를 놓고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혹은 새로운 무화과나무를 어디에 심어야 할지를 두고서도 그럴 것이다. 또 사악한 뱀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다시 인간 사회가 그곳에 만들어질 것이다. 눈물과 아우성과 경쟁을 가득한 인간 사회가 말이다. 물론 내일을 살아갈 희망을 북돋워줄 만큼의 행복과 더불어.” (344p) 우리에게 경쟁과 도전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의 맛깔나는 글솜씨는 ‘덤’이다. ▶ 예병일의 경제노트 - 트위터 : @yehbyungil / 페이스북 : www.facebook.com/yehbyung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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