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이라는 것은 상대가 나를 얼마나 존중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상대가 나를 믿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데 내가 그에게 내뱉는 말은
그 말이 유의미하든 그렇지 않든 쉽사리 상대의 가슴에 가닿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남한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한다 말하기 전에,
그 상대가 나를 믿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묻고 또 물어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아구가 맞고 서로가 소통되는 것이다.
정작 받을 사람이 받아갈 바구니도 안 들고 왔는데,
그 무엇인들 줘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어차피 고스란히 바닥에 다 쏟아버리고 돌아갈텐데...
그 정도조차 존중함과 간절함이 없는 이들에겐,
우리가 가진 노하우를 알려줄 이유도 그리고 조언의 실질적인 효과도 없다.
진짜 원한다면 끝까지 버티며 듣고자 기다릴테니까 말이다.
똑같은 밥 한 공기라도,
배고픈 사람과 배고프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가치와 감사함은 다르다.
그러니 굳이 나서서 세상을 도우려 애쓸 이유가 없다.
내가 세상을 도울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다면,
절실히 그 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나에게 찾아오게 되어있다.
내 능력이 부족하다면,
내가 나선다해도 나를 끝까지 도와줄 사람도 없거니와, 괜히 일만 벌였다가 실패하기 십상이다.
손님을 유치하고자 애쓸 이유가 없다.
정말 맛 좋고, 서비스 좋으면 고객들은 반드시 오게 되어있다.
결국, 상대를 끌어당기는 것은 매력에서 오는 거지 설득이 아니다.
남을 사랑하고 아끼려하기 전에, 나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해야한다.
남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내가 나서서 남들을 챙겨야할 필요는 없다. 그건 오버다.
듣고자 하는 사람에게 얘기해주고,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베풀어주고,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
섣불리 나서지 말자. 그건 오만이고 교만이다. Just be the Hogeon.
나 자신이 어떤 사람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지를 먼저 떠올리고,
내가 어떤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는지를 바로 알자.
그 누구도 만인의 연인은 될 수 없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지지 말자.
난 그저 서호건일 뿐이다. 그냥 서호건을 살다가 서호건으로 가는 존재이다.
더 포장할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그게 나다.
정신차리자. 큰 그림을 놓치면, 매일 밤 드리우는 차가운 어둠을 보며 세상이 마치 끝나는 줄 착각하기 십상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 똑바로 보고 똑바로 걷자!
나서서 남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은 절제할 필요가 있으나,
남이 나에게서 받을 수 있는 도움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열린 환경을 만드는 노력은 베풀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해야할 일임을 느낀다.
무조건 상대가 도움을 청하길 기다리는 수동적 조력자보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상대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능동적인 조력자가 더 세상을 더불어 살기 좋게 해준다는 말씀이셨다.
아버지의 비평을 듣고나면, 여전히 나의 생각이 여러모로 좁고 근시안적임을 느낀다.
나 역시 아버지께 이것저것 막 여쭙지도 않는다. 생각해보면 아버지께서 먼저 과제를 던지고 내가 그걸 해결해가면서, 나 스스로 깨친 것들을 아버지에게 한 번 더 비평을 받는 일들이 많은 것 같다.
교만스럽고 오만하지 않게, 허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조력자.
마음을 다해, 세상을 위해 살자. 베풀 수 있는 사람.
어떤 어려움도 감내할 수 있는 가슴 넓은 따뜻한 사람.
무엇이든 내가 가진 것을 내줄 수 있는 힘있는 사람.
이 세상의 매력을 한껏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사람.
항상! 항상! 항상!
이렇게 배우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하나라도 더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