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버지께, "아버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데요."라고 말을 꺼냈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 왈, "네가 고래냐?"
나는, "고래도 칭찬받으면, 더 신나서 더 열심히 잘한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우리도..."
아버지 왈, "고래처럼 살고 싶냐?"
나는, "고래처럼...?"
아버지는 나를 앉혀놓고 말씀하셨다.
"칭찬을 받는 동물들이 처한 현실을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동물원에 가면 고래 말고도 원숭이, 오랑우탄, 앵무새 등등 수 많은 동물들이 있다.
그들이 왜 칭찬에 춤을 추겠니? 칭찬을 하면서, 먹을 걸 더 주니까. 먹고 살려고 그런다.
걔네들은 칭찬 받기 위해, 춤을 춰야한다! 칭찬이 쏟아지면, 더 씰룩씰룩 흔들어야 한다.
똑같은 동물인데도. 야생동물들은 인간의 칭찬 따위엔 안중에도 없다.
걔네들은 그냥 지들이 춤추고 싶으면 춤추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잔다.
왜냐? 우리들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그들은 움직이면 움직이는 만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우리가 '동물원'의 동물들을 바라보듯,
야생동물들 눈엔 우리가 '동물원'의 동물들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란 얘기다.
우리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을 때, 우린 타인에 의지한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그들의 인정을 받아야, 그나마 살아갈 수 있다.
아무도 너를 '동물원'에 가두지 않았다. 넌 그 누구의 틀에도 갇혀있지 않단 말이다.
만약 네가 남들의 칭찬에 쫑긋하고 기뻐하며 살고 있다면,
이미 넌 네 스스로 삶의 능동적 자유를 포기한 거다.
그러다 훗날 칭찬이 없어지는 순간, 넌 인생무상 삶이 공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남의 기대에 부응하고 살아왔고 거기에 익숙해있으니까,
아무도 내게 기대하지 않거나 혹은 내가 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가 되면,
아마 살고 싶지 않아질 것이다. 네 스스로가 세상에 쓸모 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테니까.
호건아, 고래는 칭찬으로 키워도 사람은 그렇게 키우는 게 아니다.
넌 내가 박수친다고 춤추고, 노래하고, 공부하고 해선 안된다.
네 스스로가 춤추고 싶을 때 춤을 출 줄 알아야 하고,
네 스스로가 노래하고 싶을 때 노래할 줄 알아야 하고,
네 스스로가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할 줄 알아야 한다.
남이사 칭찬을 하든 흉을 보든 그건 그 사람들 생각이고 그들 삶이다. 네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네 뜻대로 자유로이 세상을 살고 싶다면, 그만큼 네 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난 너를 그렇게 키웠다."
그렇다. 내 학창시절 내내 아버지는 내게 한 번도 칭찬을 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뭘 못 한다고 나무라지도 않으셨다.
내게 전혀 기대를 안 한 건 아니시겠지만, 결코 내게 내색하진 않으셨다.
난 아직도 모른다. 아버지께서 내가 어떤 아들이 되길 바라시는지...
어쩌면, 그게 정답인지 모른다. 아버지까 어떤 아들을 기대하는 지 모르니까...
나 스스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아들의 모습을 찾아가는 건지도...
내게 선택의 자유와 책임을 깨닫게 해주신 아버지께 늘 감사하다.
내가 지극히 서호건답게 살 수 있게, 나란 사람에게 어떤 꼬리표도 붙이지 않으셨다.
참된 가르침은 그렇게,
'옳은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옳을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지란 말은, 결코 남의 시선을 무시하란 말은 아니다.
보다 주체적으로 행동하란 말이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신념에 따라 행하라는 것이다.
'쾅'하는 폭발음에 모두가 맹목적으로 비상계단을 향해 돌진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쳐다보며 '나도 저기로 가야하는 거 아냐?'하는 생각 대신,
'무슨 일이지? 이게 피해야할 일인가? 피하려면 어디로 피해야 할까? 어디가 가장 안전하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행하란 말이다. 그러다 죽는다고? 그럴수도 있다.
허나 남 따라가다 죽으나 내 뜻대로 살다 죽으나 어차피 죽는 건 똑같다.
다만, 죽음에 임박해서 세상을 돌아보는 마음은 다를 것이다.
전자는 세상의 무지몽매함을 원망할 테지만, 후자는 스스로의 무지몽매함을 반성할 것이다.
남 쫓아가더니 죽을 때까지도 그렇게 남 탓하고 간다. 100% 자기 삶이었는데...
얼마든지 자기가 뜻대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누가 되었든 얼마든지 남들은 우리를 평가할 수 있다. 하물며 초등학교 1학년도 우리의 얼굴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당신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남 얘기니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정작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 자기들 삶도 자기 뜻대로 제대로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이들의 말에 내 삶의 방향이 좌지우지되도록 허락하는가?
그것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책임회피다.
우린 칭찬에 길들여지는 고래가 아니다. 우린 스스로의 자존심을 깨우쳐 가는 인간이다.
자존심이란,
'자신을 존재를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남들의 마음'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분명히 아는 마음'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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