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2017.02.01 22:57

매마른 화분에 물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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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01_135830.jpg

연구실 내 자리에 곁엔 2015년 봄부터 키워온 베고니아, 카랑코에, 선인장들이 있다.
처음 샀던 해의 모습은 아래와 같았다. 보~~~오라, 이 올매나 어여쁜가~~~!

20150206_095815%5B1%5D.jpg

2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앙상하다. 간혹 살아있는 게 맞는지 내가 기르고 있는 게 맞는지를 묻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 걔네들은 살아 있다. 그리고 종종 깜빡하긴 해도 내가 물을 주며 키우고 있다.

나는 꽃을 왜 기르는가?

이 꽃들을 기르기 시작하는 마음을 담아서 Essay를 썼었던 거 같은데, 못 찾겠다.
사실 처음 마음과 지금 이들을 대하며 느끼는 것은 사뭇 다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배움과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자 노력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에 신독(愼獨: 혼자 있어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삼간다.)을 바르게 행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 먹었었다.

어떻게 자기 자신이 자기관리를 잘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살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식물을 기르자고 생각했다.
화분 하나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살피고, 조직을 살피고, 가정을 살피고, 국가를 살피고, 인류를 살피겠다는 꿈은
말 그대로 개풀 뜯어 먹는 소리에 지나지 않을 거 같았다.

그래서 꽃부터 제대로 키우자. 적어도 물만 꾸준히 줘도 잘 산다고 하니, 물조차 제대로 주지 못한다면...
나는 분명 삶의 균형을 상실하고 맹목적으로 하루하루를 과속질주하고 있는 것임을 자각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지난 2년 간 아슬아슬 했던 시기가 참 많았다. 우여곡절 속에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이었으니...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 내 꽃들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올 봄에도 꽃을 피우려면 아무래도 분갈이를 해야할 것으로 예상한다.
2년간 이미 충분히 흙에 있는 영양분은 뽑아 먹을 대로 먹었는지 흙이 푸석푸석하다.

이 꽃들을 기르면서 느낀 바가 참으로 많은데, 그 중 최근에 인상 깊었던 점은....
흙의 매마름과 물주는 사람의 마음가짐이었다.

나는 대충 월요일과 금요일에 화분별로 대략 종이컵 반 컵 정도의 물을 줘왔었다.
예전에 한 컵을 줘도 화분 받침대로 물이 새어 나오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흙이 무척이나 매말랐는지, 반컵만 줘도 줄줄줄...
겨울이기도 하고, 연구실이 다소 건조한 면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괜시리... 물조차 충분히 머금지 못하는 이들이... 처음엔... 안쓰럽고... 불쌍한게... 아니라~ 사실 짜증이 났다ㅋㅋㅋ
왠지 수요일에도 또 줘야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귀찮게시리ㅋㅋㅋ
이게 사람이다. 이게 솔직한 거다. 굳이 위선 떨고 싶지 않다.
이 얼마나 간사한가... 일주일에 두 번 물주다가, 한 번 더 늘어서 세 번 주는 게 귀찮아서 짜증이 난다니ㅋㅋㅋ
인간답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나는 꽃을 기르고 있던 것이 아니라ㅡ
언젠가부터 그저 물을 주는 습관을 무심코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익숙해지니,
무심해지고,
당연해지고,
섣불러지고,
대충해지고,
귀찮아졌다.

그래그랬다.

부끄러웠다.

꽃 하나에서도 이러니, 문득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러하진 않았을까 싶은 미안함이 가슴을 울렸다.

그리곤, 나는 다시 꽃을 바라봤다.

꽃에 물을 주는 마음은
내가 주고픈 대로 주는 것이 아니라,
꽃이 먹을 수 있도록 주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를 새삼스레 상기했다.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몇번을 주는가 아니라,
이 꽃이 물을 머금을 수 있도록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어야 했다.
하루에 10번을 나눠주든지, 흙을 새로이 담아주든지, 화분 받침대를 더 깊은 것으로 바꿔주든지...

내 삶 속에 굳어진 습관의 변화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목표했던 바, 꽃과 함께 살고자 한다면ㅡ
꽃을 대하는 자세에 근본적인 변화를 강구했어야 했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그러하지 않겠는가?
단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쳐주고자 할 때,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경우와 배울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경우,
또는 이해력이 높은 사람과 문제해결력이 높은 사람, 창의력이 높은 사람 등... 각자 다양한 지식습득의 능력과 습관을 가졌을텐데....
내가 가르치기 편한 방법으로 내가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전달한다고 해서,
결코 그것이 최선은 아님은... 그건 그저 내 입장에서 가장 편한 방법일 뿐이라는 것을... 느꼈다.

일찍이... 이러한 생각은,
아리에게 썼던 편지 "오늘 우리 산책 같이 할까? ( http://hogeony.com/119502 )"에서도 담아냈던 거 같은데..
역시... 익히고 또 익히고 또 익히며, 아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길에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인가 보다.

비단 이는 사람을 대함에만 유효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나 자신의 변화나 학문을 쌓아가는 것에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습관화되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리하게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보다
새로운 시도가 충분히 몸에 인식될 수 있도록 속도와 강도를 조절해야 효과적일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환골탈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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