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파 - 서호건
자정을 갓 넘긴
Now Tweleve Nine
그래... 내가... 저녁을
먹었었지... 6시 전에
고파... 배가~ 내 배가...
꼬륵꼬륵 비가 내려 입가에
서른을 코 앞에 둔
Now Twenty Nine
그래... 내가... 이별을
했었었지... 3년 전에
고파... 님이~ 내 님이...
새복새복 눈이 내려 가슴에
젖은 입술 훔치며
누른다 야식집 전화번호
굶주린 뱃가죽 채울라고
텅텅빈 맘구석 채울라고
내 밥은 진즉 왔는데
내 님은 언제 오려나
보고파 돼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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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작시 주제의 편협성에 대한 소명 >
공돌이가 시를 쓴다는 것은... 말 그대로 취미 생활이고, 결코 전문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유치하지만 굳이 그렇고 그런 수준의 시들은 쓰는 이유부터 말씀드리자면,
딱딱하고 건조한 일상 속에서도 인간적인 낭만을 기억하고자 하는 바람에서이다.
그런데, 산문이 아니라 운문을 쓰기 위해서는 "상"이 떠올라야 한다.
먼저 Keyword가 있고 그에 어울리는 어떤 분위기나 상황 등을 엮어야
비로소 시로 풀어 쓸 수가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동물이나 사물에 대한 관찰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의지해 시를 쓰곤 했다.
새싹, 물의 격자구조, 실타래, 벼의 고개숙임, 파도, 비누, 낙엽, 박쥐의 거꾸로 매달림, 새의 비상 등...
그러한 소재들의 특징에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심리, 삶의 인과관계들을 담고자 했다.
그래서 다소 시의 흐름이 딱딱하고, 나 혼자만 이해하기 쉽고 상상력을 발휘할 뿐,
그러한 대상에 대한 관찰이 어색한 이들로써는 '뭥미?'하는 반응이 컸다.
대학에 입학한 이래로는 인간의 감정에서 떠오르는 영감을 쫓아서 시를 많이 쓰고 있다.
울음, 망설임, 좌절, 서운함, 분노, 짝사랑, 불타는 사랑, 가슴 아픈 이별을 주제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주제들은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이해하고 따지고 상상하고 반론을 펼칠 수가 있어서 반응이 다양했다.
덕분에... 몇몇 독자분들께서... 지나치게 이성에 대한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니냐,
뭐 개인적인 감정을 대놓고 온라인에 표현하고 있는 것 아니냐 등등의 비평을 주시는데ㅋㅋㅋ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남자와 여자의 플라토닉... 또는 에로스적인 연애에 국한해서 연상한다면
뭐, 나의 시들을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는 그저 시다. 편지가 아니다.
내가 쓴 시 속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어디까지나 비유고 은유고 메타포다.
예컨대, 내 시에 자주 언급되는 인칭대명사인 "너"는 사랑하는 여자만을 함축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에 대한 해설은 < 너만 바로 볼 수 있다면 ( http://hogeony.com/2619 ) >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사실 시를 쓴 사람이 시에 대한 해설을 주저리 주저리 하는 것은 시를 시답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시에 등장하는 모든 단어와 조사와 복선은 독자의 경험과 현재의 삶과 감성에 따라 매우 주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고,
그것이 시를 대하는 자연스러운 자세라고 생각한다.
< 고파 >라는 시에 대해서도 감히 해설을 덧붙여 보자면,
사실 본 시의 영감은 그냥... 배가 고파서 정말 야식을 먹고 싶은데...
체중관리 차원에서 참아야하는 현실과 언제든지 먹고 싶은 마음만 먹으면 시키면 되는 상황에서 떠올랐고,
배고픔을 가지고 시를 써볼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최근에 비와 눈이 내리는 모습에서 젖는다는 표현과 쌓인다는 표현이 마음에 들어서
조만간 꼭 이 두 가지 동사를 넣어서 시를 써보자라는 생각으로 메모해둔 게 눈에 띄어서 엮어본 것이었다.
더불어서 나는 라임이 딱딱 맞는 걸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고프다'로 끝나는 표현으론 '배고프다.' vs. '보고프다.' vs. '하고프다.' 등이 있다.
처음에는 '배고프다'와 '하고프다'로 시를 써보려 했는데...
음... 의도는 전혀 그러하지 않고자 하여도, 본의 아니게 자칫 19금 느낌의 시가 될 거 같아서...
나로써 재밌을 거 같았지만, 청소년 독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일부러 피했다ㅎㅎ
결과적으로 얼핏보면 연애에 굶주린 하이에나의 절규를 쓴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으나ㅋㅋㅋ
나의 연애관에서 대한 글 < 좋은 것 ( http://hogeony.com/114371 ) >을 읽어보신다면,
내가 결코 그러한 스타일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 이제 메타포에 대한 얘길 잠시 해보자.
본 시에서는 크게 '배가 고프다'와 '님이 고프다'라는 양갈래로 일종의 옴니버스식 전개가 이뤄진다.
고프긴 고픈데, 고픈 대상이 다르다.
여기서 배 => 야식 vs. 님 => 사랑 이렇게까지만 연상이 된다면, 조금 더 추상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배 => 야식 => 물질 => 육체적 욕망 => 즉각적인 주문 가능 => 즉각적인 해결 가능 => 능동적인 변화 환경 또는 대상
님 => 사랑 => 감정 => 정신적 욕망 => 상호적인 조합 필요 => 장기적인 노력 필요 => 수동적인 변화 환경 또는 대상
음식이 상징하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가 마음 먹고 노력하면 해결 가능한,
예를 들면, 다이어트, 운동, 공부, 영어 실력 등등... 노력하는 만큼 비교적 즉각적이고 비례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들
반면, 님이 상징하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는,
예를 들면, 연애, 가족 간의 우애, 연구, 실험, 졸업 등등...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뜻대로 매듭짓기 어려운 것들
그러한 것으로 추상화할 수 있다.
즉 < 고파 >라는 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잘 이뤄보자는 굳은 결의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잘 이뤄지길 바라는 희망이 담긴
2017년 새해를 맞이하며 쓴 자조적인 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것 또한 그저 하나의 감상 방식일 뿐이다.
분명, 또 다른 독자는 나름대로 더 재미난 상상을 할 수도 있으리라...
다만, 최근 시들의 주제가 다소 편협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의 비평에 대해
이렇게도 생각해주십사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짤막한 소명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