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다 - 서호건
할짝 할짝
입만 댓을 뿐인데
왜 이러냐 거 겁나 취하네
안 되는데 아직 나 말짱한데
확실히 그어둔 선은
둘이 되었다 셋이 되었다
그딴 게 언제 있었냐는듯
시나브로 희미해져간다
병은 아름답고
향도 은은하고
맛이 달콤하다
일부러 닫아둔 문은
손잡이가 꼬꾸라지더니
네 둘째손가락 따라
열쇠 모양도 바뀌어간다
널 들여보내지 않으려 했던건데
이젠 너밖에 들어올 수 없어졌다
술은 입으로 흘러들고
너는 눈으로 스며든다
한 잔만 더
딱 한 잔만 더
너를 따르고 싶다
잠시만 잠시만 이대로
아주 조금만 더
너를 머금고 싶다
취하면 안 되는데
정말 안 되는데
취한다
취해버린다
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