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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3일 아침, 연구실에 들어서고 늘 그렇듯 드립커피를 내리기 전에 컵과 드리퍼를 씻으러 그 둘을 들고 세면대로 갔다.


그리고... 와장창... 컵과 드리퍼를 동시에 놓치며 바닥에 떨어뜨려 결국 깨먹었다.


하하하... 아주 기분 좋은 마음으로 새해 첫 커피를 내리려는 찰나에... 이 무슨... 오묘한 조화란 말인가...

깨지자 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조용히 일과를 준비하고 있던 우리 연구실 후배들을 깜놀케 해서 미안하다는 거였는데...

막상 깨진 유리조각들을 후다닥 치우느라 미처 미안하다는 말은 못했다.


이어서 놀랐던 것은 그 쨍그랑 소리에

이제 갓 연구실에 입실한 인턴 한 명이 내게로 와서는 빗자루를 잡고서 자기가 바닥을 쓸려고 하던 것이었다.

자기가 깬 것도 아닌데 와서 치우는 것을 도우려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 깊었고 그러한 마음만큼은 내심 고마웠다.

물론 도와주려던 그 마음을 나는 기어코 사양하고 조용히 나 홀로 정리를 했다.


내가 그에게 고맙게 느꼈던 점은

그가 나라는 사람을 챙겨주고자 했던 일종의 윗사람을 섬기는 태도 때문이 아니라,

자기 일이 아니었지만 우리의 일로써 느끼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서였다.

나는 그 후배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똑같은 일을 당했어도 똑같이 움직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소소한 일상이 한 공간에서 일어나곤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누구나 충분히 그냥 그러려니하며 지나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제 막 입실한 새 식구가 이미 그 공간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고,

그러한 상황에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자 했다는 점은 선배인 나로써도 배울 점이라고 생각하고

분명 그의 움직임은 조직에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리라고 본다.


그런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연구실에서 무선전화기를 건내받아 통화를 마치고 전화기를 들고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다른 인턴 학생이 내게로 오더니 그 무선전화기를 챙겨가겠다는 거였다. 자기가 내게 건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도 내가 돌려주러 와야하는 번거로움을 줄여주고픈 마음에서 대신 온 거란 생각이 드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그 전화기는 내가 직접 가져다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늘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하자고 해왔다.

여튼 나로서는 내가 받아들이기엔 다소 과도한 배려였지만, 바쁜 일손을 덜어주고자 했던 순수한 마음에서 움직였던 거라면...

그런 거였다면, 그 마음가짐 자체는 역시나 본받아 배울 점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지난 12월 말에 워크샵 다녀오는 과정에서도 후배들이 내게 "운전하느라 고생하셨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정말 신기한 건 그런 소소한 표현이... 정말 큰 힘이 되더라는 점이었다. 피로가 녹아내리는 거 같았다.


요즘 그렇게... 우리 연구실 후배들의 말 한 마디,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가 감동의 연속이다.

정말 올해는 왠지 뭔가 될 거 같다ㅋㅋㅋ 


그러나... 그러한 감동도 잠시...

사실 나는 아... 그 컵이... 그리고 그 드리퍼가 아까웠다.


그 컵은 미국 시카고에 출장을 갔었을 때, 장인들이 수제품을 팔던 길거리 장터에서 2개를 어울리게 골라서 사온 것이었다.

하나만 있으면 외로울까봐ㅋㅋㅋ 기어코 고르고 골라 서로 어울리는 커플로 사온 거였는데...

아놔... 이제 얘 마저도 주인따라 싱글이 되어버렸다. 거참 짠하고마ㅋㅋㅋ


그리고 드리퍼도...  컵 색상에 맞춰서 브라운 컬러로... 잘 어울리게 샀던 거였는데... 아... 아놔...


역시... 아꼈던 만큼, 아프다.

잃고나니, 더 아련하다.

있을 때, 그때 더 잘 챙길 걸...

손에 익숙해졌던 나머지...

다소 가볍게 대했던 거 같다.


컵이든 사람이든

결국 대하는 마음이 불러오는 결과는 비슷하지 않겠는가?


기억하자. 서호건!

처음 대했을 때의 그 마음.

기억하자 늘, 초심!


여튼... 드리퍼는 필요했다.

그래서... 새로운 아이를 데려왔다ㅋㅋㅋ The Three Cup Classic Series made by CHEMEX
http://www.chemexcoffeemaker.com/three-cup-classic-series-coffeemaker.html


chemex-3-cup-coffee-maker.jpg


덕분에 안 쓰고 짱박아뒀던 시카코에서 구입했던 또 다른 컵과 새로운 드리퍼가 만나,

매일 아침 새로운 분위기로 올 한 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화위복. 인생만사 새옹지마ㅎㅎ


마치 올 한 해 내가 마주하게 될 수많은 변화와 인연의 예고편처럼 느껴진다.

신입생과 인턴 학생들도 많이 들어왔고, 주요 연구주제와 방향도 변화가 이뤄지고 있고,

나의 역할과 책임도 그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연초부터 소소한 변화들이 파도처럼 일고 있다.

장차 거친 파도 위에서도 너끈히 춤을 출 수 있도록,

눈앞의 작은 파도 위에 올라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자.


Practice makes perfect.


---


Jess는 적절한 커피 메이커를 고르는 방법이 따로 있다며,
"How to Choose a Coffee Maker, According to Science – 10 Factors to Consider"
https://www.jenreviews.com/coffee-maker/
를 읽어볼 것을 추천했다. 의사결정을 위한 사고의 흐름이 잘 정리된 글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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