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秋雲, 가을추 구름운) - 서호건
요 며칠 가을 하늘이 참 좋았다
오늘은 유난히 더 공활했다
가을하늘
가.을.하.늘
이 네 글자가 매미 울음 마냥
온 종일 내 귓가에
갈~하늘 갈~하늘 갈~하늘
징그럽도록 들락거렸다
이 네 글자를 가지고
오늘 꼭 시를 써야할 거 같았다
진짜 쫌 쓰고 싶었다
멋들어진 시를
써 내려가고 싶었다
아니 사실 여러 번
마우스에서 손을 떼었고
숟가락을 툭 내려놓고
펜을 들었다
그런데 매번
가을하늘 요 네 글자에서
단 한 발짝도
더 내딛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고갤 들어보니
어둑어둑 그 새파랗던 가을하늘은
말없이 문을 닫았고
멍하니 꺼져버린 하늘을
닭 쫓던 개 마냥 올려다보는
나만 덩그러니 보였다
그 하늘이 좋았던 건데...
그 하늘이 너무 좋았던 건데...
나는 오늘 온 종일,
그 하늘이 아니라
하얀 종이 위에 흩뿌려진
검은 네 글잘 앞에 두고
고갤 푹 숙이고만 있었다
시인도 아닌 내가
공갈빵 같은 시 한편
보란 듯이 써보겠다며 깝치다가
놓쳤다
지나가 버렸다
어쩜 내 인생에 마지막이었을 수 있는
그 아름다운 가을하늘을
옅은 미소와 함께 지긋이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을 수 있었을 나를
나는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