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3일, 서호건 사망.
이러다 정말 우울증환자가 될 거 같았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더 미칠 것만 같았다.
결국 모든 걸 버리고 내 꿈을 찾아 집을 떠났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와야 했다.
날이 갈수록 염세적인 생각들만 떠올랐다. 이런 내가 나 스스로도 싫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큰일을 겪고도 전혀 달라진 게 없는 현실에 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자살까지 생각했었다.
어쩌면 이미 우울증을 앓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건 전혀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이 아니다. 현실에 찌들어 몇 개월 사이에 내 자신이 심하게 변질된 거 같았다. 머릿속에 꽉 들어찬 부정적인 생각들... 모든 일에 대한 귀찮음... 삶에 대한 무기력... 끊임없이 밀려오는 짜증...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서호건다운 게 아니다. 진짜 그건 아니다.
정신차리고 다시 똑바로 일어서자. 두 눈 부릅뜨고 앞을 보자.
그래, 안 좋은 기억들... 더 이상 가슴에 담아두지 말자.
암 덩어리 같은 그 부정적인 모든 것들이여ㅡ 이제 그만 안녕...!
그간의 아픔 불평불만 괴로움 번뇌... 오늘 이 자리에 훌훌 털어버리고...
깔끔하게 잊자... 모두 다 깨끗이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자.
그리고 두 번 다신 떠올리지 않으리라... 지금 이 순간 부로 영원히 안녕이다...!
어제까지의 서호건은 없는 거다. 죽었다.
난 다시 태어난다.
그래, 여기까지...!
지금까지의 서호건은 딱 여기까지...
내일부터의 서호건은ㅡ
더 이상 과거의 서호건이 아니다.
새로운 서호건이 되자!
진짜 서호건다운 서호건이 되자!
2004년 8월 9일 이후로 5년 반 만에, 생에 두 번째 사망신고.
나에게 있어서 '사망신고'라 함은 삶에 대한 중대한 가치관의 변화를 말한다.
새로이 정리된 가치관에 따라 지금까지 습관화된 모든 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걸맞게 진화한다.
말과 행동이 달라지고, 선택의 순간에 결정이 달라진다. 그렇게 난 내가 바라는 내가 되고자 노력한다.
올 여름, 3년 만에 새로이 리뉴얼한 홈페이지...
그 메인 화면 좌측 상단에 있는 ‘오페라 유령 마스크’. 이 가면이 갖는 상징성에 대해선 아직 누구에게도 말해준 적이 없다. 그 가면은 “서호건 하면 뭐가 떠올라?”라는 물음에 “베일, 고속도로, 스포츠카, 질주”라고 했던 성빈이의 답에서 얻은 것이다. 베일(Veil)은 곧 가면이고, 가면은 다양한 모습으로의 변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나를 찾아 변하고자 하는 서호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역시, 정성빈... 룸메이트로서 1년을 동고동락하며 24시간 항상 함께 했던 만큼, 괴짜스럽고 변덕적인 “찰나적 멘탈 쾌락주의자 서호건”의 진짜 모습을 가장 많이 봐온 지기지우다운 답변이었다.
그래! 서호건!!!
진짜 제대로 변하자! 서호건다운 서호건으로 거듭나자!
마술처럼… 기적처럼… 꿈처럼… 말 그대로 ‘생각대로 호건!’이 되자!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걸 바탕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지금의 난,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일의 난, 분명 내가 원하는 ‘나’가 되어있을 것이다.
오직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만을 비교하겠다.
어제보단 오늘의 내가 더 멋있고, 어제보단 오늘이 더 행복하게~
어제보다 오늘의 서호건이 더 서호건다울 수 있도록 끊임없는 성찰과 도전을 반복하리라.
기필코 10년 안에 삶이란 무대 위에서, 당당히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가면을 찾아 쓰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마. 내 삶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키겠다...!
오늘의 이 결정은 앞으로 내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천천히 시간을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왔다.
이 글을 써 온지가 벌써 두 달 째다.
실제로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2009년 10월 20일이었다.
그 동안 고민해온 물음은,
‘과연 이 시점에서 내가 변해야만 하는가?’
‘지금까지 잘 지켜온 가치관들을 굳이 바꿔야만 하는가?’
‘꼭 그래야만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 번째 사망신고로부터 5년 반...
고3 => 1년, 대학 => 2년, 군대 => 2년, 재대 후 => 6개월...
그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첫 번째 사망신고를 하며 스스로 다짐했던 것들...
* 하고자 하는 공부! 맘 놓고 할 수 있을 때, 맘껏 하자! 공부가 싫어 질릴 때까지 해보자!
* 짝사랑은 하지 말자! 나도 좋고, 상대도 좋은 둘이 하는 사랑을 하자!
* 리더보다 구성원으로써 활동하며, 나 자신의 역량을 키우자!
* 문화 예술을 즐기고, 다양한 것들을 배워 삶을 풍요롭게 하자!
* 나만의 무기가 될 남다른 특별한 경험들을 하자!
그리고 실제로 해온 일들...
*하고자 하는 공부! 맘 놓고 할 수 있을 때, 맘껏 하자! 공부가 싫어 질릴 때까지 해보자!
학우들의 동기부여를 위한 수많은 학급회의.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자며 교실 칠판에 써놓던 여러 명언들. 고3 마지막까지 반장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공부하려는 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학급분위기 조성에 애썼다. 기숙사 회장으로서도 다들 각자의 뜻하는 바를 이루길 바라는 마음에,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 마음 애써 감춰가며 학구적 열기를 유지하고자 엄격하게 원리원칙을 내세웠다. 물론 공부에 집중하고자 했던 나 자신을 위해서도 그래야만 했다. 때론 묵언수행까지 했었고, 2시간씩 자면서도 공부를 했었다. 수능 치는 그날까지 내 왼쪽 손목엔 검은 볼펜자국이 지워진 날이 없었다. 시름시름 약해지는 의지를 다지고자 항상 마음의 양식이 될 좋은 글귀를 문신처럼 써놓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랬던 내게 공부를 못하게끔 하려는 수많은 수작을 부려왔다. 어떤 때는 중간고사를 코앞에 두고 밤늦게까지 시험공부를 하다 아버지께서 집에 들어오신 줄도 몰랐다가 버릇없는 놈이라는 질책과 함께 그런 정신으론 공부하지 말라며 참고서를 다 찢어버린 일이 있었다. 난 그 찢어진 참고서를 붙들고 다시 공부를 했고, 학교도 다닐 필요가 없다며 내일부터 학교 가지 말라는 호된 야단에도 다음날 아침 꿋꿋이 학교엘 갔다. 밤새 흘린 눈물에 땡땡 부은 두 눈 아침도 못 먹고 나와 그늘진 얼굴로 아침자습을 하고 있던 나를 담임선생님께선 조용히 불러내어 컵라면을 챙겨주시며 빈 교실에서 먹게 하셨었다. 수능을 2주 앞둔 2004년 11월 9일엔, 갑작스레 삶을 포기하겠다는 아버지의 폭탄 선언과 함께 내가 죽을 뻔한 고비가 있었다. 난 내 모든걸 걸고 겨우 아버지를 진정시켰고 그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수능을 치렀었다.
그 밖에도 별의별 놈의 수작들에 난 그저 당하고 넘어지고 놀아나면서도, 꼭 대학엘 가서 더 깊은 공부를 하겠다는 내 의지만큼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었다. 내가 원하는 수업을 골라 듣고, 온종일 도서관을 헤집어가며 마음에 드는 책을 읽고 싶었다. 지성의 요람에 파묻히고 싶었다. 공부에 미쳐 시간이 가는 줄 몰랐으면 했다. 당시엔 오직 그 마음 하나로 다른 모든 걸 감싸 안았다. 그뿐이었다. 나는 아이큐도 107이고, 기억력도 그다지 좋지 못하다. 그래서 항상 메모를 해야만 하고, 무엇이든 기록을 해둬야 한다. 단순한 덧셈뺄셈조차 암산이 잘 안되 일일이 종이에 적어 푸는 게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다. 그래서 월등히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공부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 누구보다 새로운 뭔가를 배우고 그렇게 배운 걸 다시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나름대로 응용해보고 다른 영역에 접목시켜보는 것. 그것들이 내겐 너무나 재미있는 일이었다. 대학 도서관에 한 자리를 잡고 3주 동안 그 책상에서 먹고 자면서까지 공부를 해보고 성빈이와 함께 수많은 밤을 지새우면서도 공부했었지만, 단 한번도 공부가 질려서 때려 치고 싶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우린 공부 때문에 더 진솔한 관계로 거듭났고, 나날이 성장하는 우리 사고력을 체감하며 한없이 즐거웠고 행복했다. 군대에서도 틈틈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나 자신의 성장에 대한 보람과 즐거움을 느꼈고, 역시나 행복했다.
* 짝사랑은 하지 말자! 나도 좋고, 상대도 좋은 둘이 하는 사랑을 하자!
대학 합격발표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한 술자리를 기점으로 나는 7년 간의 짝사랑을 정리했다. 혼자만의 사랑이 아닌 둘이 하는 사랑을 위해,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꼬리표를 미련 없이 떼내 버렸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 후로는 내게 마음이 없다는 여자에겐 재차 매달리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오다 2009년이 여름, 처음으로 연애를 했다. 나 스스로도 내가 그렇게까지 그녀에게 빠져들 줄은 몰랐다. 그녀가 너무나도 좋았던 나머지 나는 함께할 수 있는 그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걸 주려했고, 그 때문에 본의 아니게 그녀가 내게 미안함을 느끼게끔 했었다. 그녀가 떠나고 난 뒤에야 비소로 난 그녀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느꼈고, 그녀가 내게 마음을 열 여유조차 주지 않았던 나의 이기적이고 조급했던 욕심을 반성했다. 하나하나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그녀는 내게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함께 하는 내내 내게 항상 기쁨을 줬고, 행복한 추억들을 선사했다. 그녀에게서 참 많은 걸 배웠고 지금도 많은 걸 배우고 있다. 그녀의 마지막 바람에 결코 난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 마지막 모습마저 착하고 예뻤던 그녀의 선택을 그래도 존중해주고 싶었다. 비록 그 때문에 더 이상은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전해줄 수 없게 되었지만... 그녀는 그 존재자체만으로도 여전히 내 삶에 큰 힘이 되고 있고, 난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그녈 위해 기도를 올리고 있다.
* 리더보다 구성원으로써 활동하며, 나 자신의 역량을 키우자!
대학입학 후, 4~5명의 모인 자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 외엔, 특별히 대표자로 나서지 않았다. 대신 그럴 시간에 책을 읽었고, 글을 썼고, 뮤지컬과 연극을 보았고, 영화뿐 아니라 미술과 전시회, 박람회를 찾아 다니며 교양을 쌓았다. 남을 이끌고 통솔하기 보단 나 자신을 다듬고 가꾸고자 했다. 그러면서 미래를 꿈꿨고, 희망을 키웠다.
* 문화 예술을 즐기고, 다양한 것들을 배워 삶을 풍요롭게 하자!
마술과 데생을 배웠었고, 홍대 클럽을 배회하며 음악에 취해 춤을 추기도 했었다. 홀로 청계천 둔덕 벤치에 앉아 오카리나를 연습하다 무심코 지나치시던 '오영화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그 계기로 악보 보는 법과 연주 기법을 체계적으로 배웠었다. 수상스포츠도 많이 했다. 웨이크 보트도 배웠고, 제트스키도 몰아봤다. 히다카 덕분에 태평양 바다에서 파도 서핑도 했다. 한강에서 윈드서핑도 배웠다.
* 나만의 무기가 될 남다른 특별한 경험들을 하자!
서울 올림픽 공원 개선문 앞 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혼자서 프리허그를 했었고, 샬라 미라클을 준비하며 영어 꽁트도 해봤다. 자전거를 타고 한반도와 제주도까지 돌며 한 달 동안 전국일주를 했었다. 단 한 시간 만에 신촌에 있는 모든 분식집에서 찾아 다니며 음식을 딱 하나씩만을 먹어보기도 했다. 헌팅을 하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호감을 얻고 관심을 얻는 법을 배웠다. 그 밖에도 차마 공개하기 어려운 일반적인 시각으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유별난 경험들도 많았다. 그러면서 나는 점차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고 자신 있게 ‘나’란 사람을 표현하며 상대와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는 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변하고자 했던 내 모습대로 100점 만점은 아니더라도, 나름 90점 정도는 줄 수 있을 만큼 틈틈이 행복하게 즐겁게 잘 지내왔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 가치관을 바꾸려 하는가...?
도대체 지금까지의 삶에서 뭐가 마음에 안 들었길래...?
음... 그렇다. 지금까진 나름 행복했다.
그런데,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을 거 같았다.
올 한해는 유독 참고 이겨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특히 지난 3개월간 아버지 사업을 거들면서 나의 인내력은 극에 달했다. 밤낮없는 일 때문에 고되고 힘들었던 거?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일하면서도 난 꼬박꼬박 헬스와 수영을 한 시간씩을 했을 만큼 체력과 깡다구만큼은 충분했다. 내가 무엇보다 괴로웠던 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다른 누구도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는 동안 나 아닌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내가 일궈온 독보적인 역사는 정체된 체 단 한 줄도 더 이상 써 내려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그래야 할 이유가 돈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나 자신에게 너무나 치욕적인 것이었다. 그건 나의 꿈을 무참히 깔아뭉개고 있는 때묻은 현실과의 타협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난 내가 중시하는 가치들이 하나 둘 배제되어가는 걸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사업이었고 아버지가 오너였기에...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사람이 내 아버지였기 때문에, 참아야 했다. 그 불가피한 상황이 내겐 무척이나 괴로운 것이었다.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가족의 화목이라는 가치가 걸리지 않았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나 스스로를 옥죄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 참고 참으며 그렇게 열심히 해서 번 돈... 그 돈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내 남은 대학생활 마음 놓고 할 수 있을 만한 돈이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욕심을 버리고 여유를 찾자고 그렇게 말했건만, 버는 만큼 더 불행해졌고 더 괴로워지지 않았는가? 내가 보기엔 버는 족족 행복을 돈과 맞바꾸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조금도 행복하지도 보람되지도 않았다. 얼마든지 더 잘할 수도 있었지만, 더 이상 단 한 발짝도 나서고 싶지 않았다.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더 이상은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뭐 처음부터 돈에 대한 미련은 없었기에 그 상실 자체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내가 그 동안 이뤄 논 게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는 그 사실만큼은 쓰라렸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내 꿈을 향해 한 발짝이라도 더 걸었더라면 어떤식으로도 지울수도 훼손할 수도 없는 내 역사를 써내려갔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아쉬움에 가슴이 저려왔다. 그리고 깊이 반성했다. 두 번 다신 돈과 나의 시간을 맞바꾸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돈이야 얼마든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벌 수 있겠지만, 이 찬란하고 뜨거운 젊음은ㅡ 우주가 내게 선물한 지금 이 순간 만큼은ㅡ 일단 흘러가 버리고 나면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는 걸, 결코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뼛속 깊이 새겼다.
That which does not kill us makes us stronger.
- Friedrich Nietzsche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후배들에게 자주해줬던 말이다.
하지만 피할 수 있으면? 그럼 피해야 한다! 그건 비겁한 게 아니라 현명한 거다.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 치려는 게 오히려 무모한 짓이다.
삶은 특별히 우리만을 배려하지 않는다. 시간은 잠시도 우릴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건 한줄기 강물처럼 결코 인위적으로 멈출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흐름이다.
그렇기에 행복하고자 한다면, 현실을 직시하며ㅡ
그걸 피해야 할지 아니면 이겨내야 할지를 구분할 줄 아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분별을 위해선, 무엇보다도 자기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이 같은 현실감각과 스스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우리 각자는 스스로에게 가장 어울리는 삶을 살며 행복을 향해 갈 수 있다.
고래가 육지에서 살수 없고, 코끼리가 바다에서 살수 없듯…
우리 각자에겐 고유한 역사와 나름의 독특한 개성이 있다.
그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며, 오직 나만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허나 나만이 분명하게 알 수 있을 뿐, 나라고 해서 당연히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걸 알기 위해선 우린 스스로를 의문의 대상으로 놓고 수많은 실험을 해봐야 한다.
그걸 알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이 바로 ‘자아탐색’이고,
그걸 바탕으로 행복한 삶을 일궈가는 게 ‘자아실현’인 것이다.
이를 Socrates는 단 한마디로 축약했다.
“Know thyself”
너 자신을 알라는 지극히 이 단순한 말 한 마디에 삶의 모든 진리가 담겨있다. 행복하고자 한다면… 삶을 즐기고 싶다면… 나 자신을 제대로 알면 된다.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된다. 내가 하고픈 게 뭔지, 그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뭔지, 그리고 또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뭔지를… 그것만 알면, 자연히 행복과 즐거움은 그림자처럼 항상 우릴 따라다니게 된다.
그 동안 곰곰이 생각해봤다. 현실을 직시하며, 지금의 내 위치와... 내가 진정 가고자 하는 길이 무엇인지... 내 남은 여생을 통해 이루고픈 것이 무엇인지... 설령 내일 죽더라도, 지금 이순간 무엇을 위해 살다 가고픈지... 지금 이 순간이 흘러 나중이란 시간이 된 후, 지난 날을 돌이키며 후회하지 않도록...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를... 천천히 생각해봤다.
내 삶의 신조 : Capre Diem...!
오래 전에 정리했던 이 말의 의미ㅡ
오로지 지금 이 찰나에만 몰입하라는 ‘한시적인 쾌락추구’가 아닌,
지금 느끼는 이 즐거움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도록 즐기라는 ‘지속 가능한 쾌락추구’
그 가치관은 지금도 확고하고, 행복주의자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쾌락주의자로서의 삶에 대한 인식은 여전하다. 그 큰 뿌리엔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 다만 내가 지금 반성하고 바꾸고자 하는 것은, 본의 아니게 지나치게 현실에 몰입한 나머지 그 지속가능성을 스스로 무너뜨려왔기 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그런 특성이 나타났다.
공부,
항상 정말 열정적으로 임했으나 결과적으로 그만한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함께 공부하는 이들이 정말 과수석 하겠다고 여겨줬고, 교수님들께도 Excellent하다는 평가를 하셨었다. 물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나 역시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매번 결과는 기대 이하로 나타나는 용두사미의 꼴이었다. 당시엔 이러면서 커가겠지 생각하며 넘어갔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럴 때마다 내가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지 않았던 거 같다. 분명 어딘가 어떤 부분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기에 그런 결과가 반복되어온 것이었을 텐데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난 계속 평생 공부를 하고 싶다. 보다 더 다양하게 또 깊게 파고들고 싶다. 허나 앞으로도 계속 그와 같은 결과라면, 난 대학 이상의 학문을 이어가기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내 꿈을 이뤄감에 있어서도 그 때문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그럼 지금 느끼는 이 즐거움의 역치 이상의 쾌락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보다 더 깊은 학문을 접하고 그 분야의 최고가 되고자 한다면, 나 스스로가 그만한 자질이 있음을 공식적으로 증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려면 그냥 무턱대고 즐기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이왕 즐길 거면 제대로 즐겨서 그렇게 즐긴 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 느끼는 학문의 즐거움을 평생토록 계속 이어갈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래야만 내가 학문을 통해 돈을 벌수 있고, 그 돈으로 계속 연구를 하고 공부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꿈,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수립하고 환경을 구축하는 것까진 잘해왔다. 그러나 벌여놓은 일을 꾸준히 관리하고 유지하며, 끝까지 완수해 내는 능력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그나마 자전거 전국일주와 군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보다 나은 모습을 보였다만, 장차 더 큰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보다 현실적인 계획수립과 그에 대한 꾸준한 관리능력, 완벽한 마무리는 내가 반드시 보완해야 할 가장 필수적인 요소다.
나의 사회적인 꿈은 ‘영구적 인재양성 장학재단’을 세우는 것이고, 그 재단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을 세울 것이며, 그 기업을 세울 만한 인물이 되고자 로봇 시장이 폭발할 2020년 안에 로봇하면 ‘서호건’이 떠오를 수 있도록 브랜드 가치를 창출해낼 것이다. 그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로봇분야의 전문성을 높여가며 그 분야의 모든 이들에게 ‘서호건’이란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도록 전국대학연합 로봇 전문 동아리를 창설하고 그 구성들과 함께 글로벌 로봇전문 커뮤니티를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 꿈을 위해 한동안 멀리했던 리더의 자리로 다시 향해가겠다.
무엇보다 먼저 그 자리에 걸맞은 자격과 능력부터 갖추겠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결코 대체할 수 없을 나만의 고유한 가치를 창조하겠다.
그러면서도 내 영혼을 보다 더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
항상 문화예술을 가까이 하고 매년 100권 이상의 독서를 하고,
아리를 위한 편지도 쓰고, 스포츠댄스도 배워 전국대회에 출전하고,
헬스와 등산을 하며 30살 이전에 Edge Body도 만들겠다.
사랑,
내게 있어서 ‘사랑’이란 가치는 나의 ‘자아실현’과 대등하다고 할 만큼 중요한 것이다. 아무리 꿈을 이루고, 내가 바라는 모든 것들을 실현시켜도... 정작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며 그 행복을 공유할 수 있는 생의 반려자가 없다면, 그 모든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치는 결코 독립적일 수 없다. 인간이 느끼는 모든 것은 상호보완적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말 그대로 쌩쇼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 서로가 서로의 삶의 배경이 되어주고 있기에 우리의 삶이 삶다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꼭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삶 역시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우리에겐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 나만큼이나 나를 아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서로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줘야 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에 이런 생각이 잘 담겨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그게 바로 사랑인 것이다. 우리의 삶에 사랑이 없다면,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면… 제 아무리 멋진 삶을 살아도 함께 나눌 이가 없다면, 그게 말 그대로 인생무상인 것이다. 보석이 보석일 수 이유는, 누군가가 그 돌 조각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원숭이에겐 다이아몬드든 모래알이든 똑같은 돌멩이일 뿐이고, 제 아무리 아름다운 명곡도 귀머거리 앞에선 느낄지도 못할 무의미한 것일 뿐이다. 문득 Before Sunrise에서 Celine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I had worked for this old man and once he told me that he had spent his whole life thinking about his career and his work. And he was fifty-two and it suddenly struck him that he had never really given anything of himself. His life was for no one and nothing. He was almost crying saying that.
I believe if there's any kind of God it wouldn't be in any of us, not you or me but just this little space in between. If there's any kind of magic in this world it must be in the attempt of understanding someone sharing something. I know, it's almost impossible to succeed but who cares really? The answer must be in the attempt.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접한 모든 문학과 예술이 내게 남긴 메시지는 ‘사랑’이었다. 자기 자신을 아끼는 만큼 진심으로 사랑하라고...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힘겨움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 믿고 의지하라고... 그 뜨거운 사랑이야 말로 이 차가운 세상을 꿋꿋이 해쳐갈 힘이 될 것임을 내게 알려줬었다. 사랑의 힘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니까...
그래서 ‘진정 순수한 사랑’을 찾아 헤매고 또 헤맸었다. ‘내게 올 사랑이 대체 어디에 있나?’싶어 항상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왠지 닿을 것 같기만 하면 손을 뻗어 낚아채려 했다. 난 그렇게 내가 열심히 사랑을 쫓으면 사랑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정작 사랑이 찾아왔을 땐, 눈 앞에 사랑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정작 나 자신을 돌보지 못했고 그와 동시에 상대의 마음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난 내가 아무것도 이루지 않았을 때, 단지 꿈만 가지고 겁 없이 세상을 향해 덤벼들 때, 그때 내 생의 반려자를 만나고 싶었다. 나의 가능성을 믿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고 싶었다. 물론 그러면서 나 역시 상대의 자아실현을 진심으로 지지하고 돕고 싶었다. 그렇게 조건 없이 만나 서로를 북돋아주며 서로의 꿈을 향해 함께 커가고 싶었다. 평생을 함께 할 사람과 젊은 날의 즐거움과 힘겨움까지 나눌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꿈과 사랑 모두를 이루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와 깨달은 건…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었다는 것이다. 20대 초반에 벌써 생의 반려자를 찾고, 황혼의 행복을 꿈꾸는 진지함을 받아들인다는 건 상대로선 이미 삶의 많은 요소들이 결정지어져버리는 실로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얼마나 구속적인 것인가? 사랑을 빙자해 삶 자체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상대의 자아실현과 자유를 나의 그것들만큼이나 존중하겠다면서, 실상 그 모든 걸 큰 틀 안에 가둬버리는 게 아니겠는가? 그건 옳지 않는 것이었다. 상대에게 뭘 믿고 그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상대에게 그 정도 마음을 갖고 있다 해서? 내가 사랑하니까 상대도 그러길 바라는 거? 그건 사랑이 아니라 이기적인 욕심이다. 진정한 사랑은 나만큼이나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그런 사랑을 꿈꾼다면 오직 그 사람만 보며 그 상대가 날 좋아하기를 바라고 있을 게 아니라,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만큼 그 사람이 내게 끌릴만한 강한 매력을 내가 소유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랬다.
난 학업, 꿈, 사랑 모든 부분에서 바라는 대로 현실에 아주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모든 면에서 시작도 좋았고, 어느 정도까진 잘 풀어왔다. 그러나 항상 그 끝엔 아쉬움을 남겼다. 그 다음을 기약하지 못했다. 지속가능한 쾌락추구… Carpe Diem의 진의를 잊고 살았다. 더 이상은 그러고 싶지 않다.
2007년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2008년이 삶에 대한 의지와 대인관계에 대한 가치정립이었다면,
2009년은 내게 진짜 바라는 꿈이 뭔지,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지금 무얼 해야 할지를 물었다.
Destiny is not a matter of chance; but a matter of choice.
It is not a thing to be waited for, It is a thing to be acheived.
-William Jennings Bryan
그렇다면, 진짜 내가 바라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명품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스럽고 섹시한 남자가 되고 싶다.
명품다운 사람!
명품은 유행을 쫓지도 타지도 않는다. 독보적인 역사 자체로 차별화된 가치를 추구한다.
명품은 경쟁을 하지도 비교를 받지도 않는다. 오직 스스로가 부여한 스스로의 가치에 충실할 뿐이다.
그렇게 명품답게 생각하고, 명품답게 말하고, 명품답게 행동하자.
더 이상 바보처럼 꿈만 꾸는 몽상가에 머물진 않겠다.
대신, 나 스스로를 낮추고 겸허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제대로 준비하겠다.
내가 꿈꾸는 그 자리에 그 누구보다 가장 잘 어울리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거듭나겠다.
내가 그 자리를 향해 쫓아갈 게 아니라, 그 자리가 오직 나만을 원하게끔 만들겠다.
섹시한 남자!
더 이상은 맹목적으로 사랑을 쫓지 않겠다.
대신, 그녀가 날 사랑할 수 밖에 없을 만큼 매력적인 사람으로 거듭나겠다.
날 갖고 싶어하게끔, 그녀의 마음이 사로잡힐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섹시한 남자가 되어 그녀 앞에 서겠다.
그게 진정 내가 내 꿈을 이루는 길이고,
그게 진정 내가 그녈 사랑하는 마음이리라.
새로운 나는,
명품다운 섹시한 남자…
그래, 명품답게 섹시하게 살자!
그게 진정한 Carpe Diem 정신이다
그게 진짜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다.
그래, 그렇게~ 이제 다시 난 내 갈 길을 가련다. 나 자신에게 떳떳한 삶을 살련다.
내가 꿈을 이뤄감에 있어선, 그 어떤 것도 감수할 자신이 있다. 고통 따윈 없다.
그 길 위에서 마주할 모든 것이 하나하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들일 테니까...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 Robert Frost
2010년은 내 안에 겨울 잠을 자던 호랑이가
용맹스럽게 효표하며 다시 태어나는 해가 될 것이다.
진짜 내가 바라는 ‘나’가 되겠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10년 후, 오늘의 이 약속들이 축배가 되어 날 적실 수 있도록…
그날을 기약하며... 불태우자. 나의 찬란한 젊음을…
꿈과 사랑으로 더욱 더 뜨겁게~!
My sun sets to rise again
- Robert Browning
엮인글
2004.08.09 - 8월 9일...
http://www.seohg.x-y.net/xe/?mid=episodes&document_srl=7597
2004.08.03 - 오늘 새로운 출발을 약속한다. 8월 3일..
2009년 1월 1일, 굳은 결의를 다지며ㅡ
새해 처음으로 꼭 사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시계였다.
그 무엇보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순간을ㅡ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나의 이 젊음을ㅡ
소중히 여기고 감사히 쓰겠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다시 뜨겁게 떠오르자는 의미에서
"Sun"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앞으로 Sun과 함께 내 꿈의 향해
부지런히 나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