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었다.
차라리 내가 죽으면...
그럼 그제서야 좀 깨닫고 정신을 차릴는지…
하… 그저께… 아침 내내 일하고,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짬을 내어 혼자서 집엘 갔다.
일주일이 넘도록 여전히 잿더미 속에 덮여 있는 물건들을 어쨌든 정리해야 했기에…
이번 일은 그냥 내 선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 했는데…
도저히 혼자서 감당 못할 거 같아… 마지못해 승현이에게 전화를 했다.
“승현아… 바쁘냐…?
“왜?”
“나 좀 도와주라…”
“뭘?”
“불이 났는데… 정리를 좀 해야겠는데… 혼자선… 좀 힘들 거 같다.”
승현이도 현장을 보기 전까진, 내 말이 농담인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어느 것 하나 그을림이 안 간 것이 없었건만…
그래도 하나라도 더 건져보려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 추운 날씨 속에서도 승현이는 별 말없이 묵묵히 상자를 채워줬다.
덕분에 모든 짐을 다 정리하고, 승현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저녁 챙겨주고…
공장에 돌아와 업무까지 마무리 짓고, 수영과 헬스를 하러 가는데…
뭔가 몸이 이상했다.
오후에 짐 정리를 할 때도, 오한이 좀 있길래 몸살 끼가 있나 보다 싶어 일찍 자야겠다 했는데…
씻으러 들어갔는데, 배가 살살 아파왔다. 결국 운동은 포기하고, 곧바로 약국에 들러 증상을 말하니… 추운 날씨에 위가 부담을 느껴서 그럴 수 있다며, 몸살 감기약에 위장약을 챙겨줬다.
다시 차를 몰고 내 방으로 돌아오는데, 하늘에선 눈이 내렸다.
진눈깨비가 아닌 진짜 첫눈이었다.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난, 결국 앓아 누웠다. 배가 너무 아파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어제 아침에도 일어나지 못했다. 물만 마셔도 토할 것만 같았다.
아침에 엄마에게 전활 걸어 속이 안 좋으니 죽을 좀 사다 달라고 했는데, 점심 무렵에 올라와서 죽은 커녕 어제 야간근무자가 불량이 내서 업체 관계자들 와있다며 나보고 수습을 좀 해달라며 내려와달라고 했다. 마지못해 그 몰골로 내려가 겨우 일을 마무리 짓고 올라와 저녁때까지 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저녁 8시쯤 되어서야 엄마가 죽을 사왔다. 헌데 죽조차 먹으면 토할 것만 같았다. 그래도 한끼도 안 먹을 순 없단 생각에 꾸역꾸역 먹고, 다시 누웠다.
역시 어제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엄마가 올라왔다.
이틀째 고작 한끼 먹고 앓아 누워있는 내 귀에 들린 첫마디는…
“몸은 좀 괜찮냐?”는 걱정의 말이 아닌,
“오늘도 이렇게 누워 있으면 어떻하냐?
갑자기 기계가 멈춰서 말을 안 듣는다. 너가 좀 봐줘야겠다.”는 말이었다.
전역하던 날에도…
내게 “고생했다. 축하한다. 점심은 먹었냐?”는 말보다,
“공장에 일 있으니, 지금 바로 와줘야 겠다.”는 말부터 했던 것도…
정말 너무나도 서운했었는데…
도와달라기에…
군생활하며 틈틈이 공부하고 기획해서 준비한 휴학 계획과 꿈을 뒤로 하고,
일단 내려와 죽자 살자 일 거들며…
현장 환경 싹 다 개선시켜놓고,
몇 달째 고장 나 있던 기계 손수 다 고쳐놓고,
밤낮 없이 일해가며 사상 최고치의 매출을 이뤄놨더니…
그 와중에 앓아 누운 자식에게 고작 한다는 말이… 그 말 뿐이요?
내가 한 달 전에 이미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
이쯤에서 만족해야 한다고 더 이상 무리하면 안 된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결과만 남기게 될 거 같다고…
그깟 돈 몇 푼에 자식과 부모 사이 금 가게 해선 안 된다고…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다고...
그렇게 내가 괴로워하며 말했건만…
끝끝내 날 만류하던 엄마의 말에…
내가 ‘그래, 조금만 더 버티자. 버티자.’ 하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했던 대로 안 좋은 일이 터졌고...
내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출을 하자, 집을 그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렸고…
마지못해 되돌아와 그 뒷수습 다 하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내게 상처를 줘야만 해요? 그렇게 날 힘들게 해야만 해요?
아무리 아니라고 생각해도… 자식으로써 정말 깍듯이 예의 바르게 잘 참아왔는데…
어른들이면 어른답게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알아야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울 수 없는 상처만 깊어지고 있는데…
왜… 왜 아직도 깨닫질 못하시나요…?
그렇게 말을 해도 왜 이해하시지 못하나요?
도대체 언제 어디까지 제가 참고 견뎌야 하나요?
이제 좀… 그만 합시다.
정신 좀 차리세요.
사람이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하고,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하고,
머무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
말로만 하지 마시고,
제발 그 말대로 행할 줄 아셨으면 좋겠어요.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면서요.
저는 하루를 살아도 그렇게 살려고 하는데…
정작 제게 그렇게 말씀 하셨던 당신은 왜 그렇지 못하나요?
왜 자꾸 모두가 불행해지는 길을 향해만 가려 하나요?
뭘 위해서? 결국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결코 지금처럼 하시면 안되요.
지금까지도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까지도 너무 괴로웠다고요.
더 이상은 아니에요…
조금 더 얻으려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걸 잃을 수도 있어요.
알고 보면, 사업도 삶도…
욕심부리면 그게 다 결국 도박이에요.
얻는 건 힘들어도, 잃는 건 한 순간이에요.
그러니 이제 제발 좀 그만 합시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제가 앓아 누워도,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시는데…
하…
제가 죽으면, 그땐 좀 깨달으시겠습니까?
이제 좀…
그만 합시다.
승현이 말대로...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내 발로 내려와 택한 거니...
결국 이게 다 내 잘못이고 내 책임이란 말이... 맞는 말인 줄은 나도 아는데...
후... 2009년 참...
내가 오늘 목숨을 끊지 않음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중학교 때도 1학년 말... 겨울...
그래 이맘 때쯤... 그때도 죽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땐 그래도 유유진 선생님이 계셨다.
그 분이 내게 마지막 희망을 심어 주셨었다.
고등학교 수능을 일주일 앞뒀을 때도...
정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떄가 있었다.
그땐 대학엘 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그 일념 하나가 모든 걸 견디게 했다.
지난 3개월...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까지 처절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불행하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도저히 더 이상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래도... 혹시나 싶어...
마지막으로 책을 들었다.
내 마지막 결정이 틀렸을지도 모르니까...
다시 돌이킬 순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 오히라 미쓰요
이 책이...
날 살렸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그래, 마지막으로 믿는다.
나도 두손 모아 기도를 했다.
생에 처음으로 신을 믿고 싶어졌다.
신에게 의지하고 싶어졌다. 진심이었다.
신이 있어... 날 좀 살려줬으면...
제발 이곳에서 날 꺼내줬으면 바랬다.
하...
해낸다.
그래... 해낸다. 기필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