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많은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역시나 삶에 대한 논거는 지혜라는 이름의 단순한 결론이 아니라
끝없는 질문을 낳는 또 다른 물음의 시작인가보다.
삶에 대한 능동성과 신중함
그리고 적극성과 절제력
이상과 현실
큰 줄기의 줄타기도 힘겹지만은, 그 줄타기를 위한 수많은 작은 몸짓들은 오죽 골치인가~?
골치?
골치라하기엔... 나에겐 너무 큰 즐거움을 주는 골치인가?
음...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많은 이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들은 칭찬일색... 오죽 고마우랴... 물론 나 없는 곳에서는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모를 일이지만...
고맙다. 항상 나를 좋게 평가해주고, 믿어주고, 힘이 되어주고...
심지어 누군가는 그랬었다.
"널 정말 존경한다."고...
세상 누군가가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넘어서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나처럼 되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기쁜 일이다.
누군가의 삶의 등불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다.
하지만...
그러한 영광과 존경, 신용, 친창... 이 수많은 날 향한 달콤한 목소리들이 나를 진정 행복하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는 나의 가까운 지인들에겐 종종 하는 이야기이고,
그들에게도 난 그런 말보다 나 자신이 바꿨으면 하는 것들에 대해 물어본다. 내가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삶의 방향에 있을 수 있는 맹점을 찾고자...
진정 나를 이해해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겐 항상, 나 자신의 행동에 있어서 바라는 점을 솔직히 듣고 싶다고 묻곤 한다.
물론 심리학적 측면에서 이를 해석하면, 여러 결핍성에 대한 자기방어심리와 사회적인정을 요구로 하는 심리적 요소 등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묻는건 결코 대중의 평가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령 나를 욕하는 일이 생길지라도 난 개의치 않을 것이다.(다행히도 아직까지 이런일은 없었다)
나를 이해해줄 수 있다는 전제는 내가 상대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는 경우로 아주 극히 소수의 지인을 말한다.
물론 필요에 따라서 조직적 활동에서 동료들에게 묻는 경우는 있지만, 이는 협력을 위한 나의 배려이지... 나의 삶의 방향에 대한 변화를 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일반적 심리적 특성에는 무관한 나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솔직한 지적은 나에겐 큰 가르침이되고, 그것을 곱씹으며 나 스스로를 다듬는다.
그러한 과정에서 정말 나 자신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확인할 때... 내 삶에 전념하는 매 순간이다.
그러한 모습에 대한 나의 그 극소수의 지인들의 소소한 격려를 들었을 때...
그 때 나는 진짜 쾌락을 느끼고, 행복하다.
나 자신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얻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육체과 정신의 공감각적 쾌감이,
오르가즘보다 더 강하고 지속적인 쾌감을 준다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를 스스로 어떤 사람인가 묻는다면...
중학교 때부터 생각해왔는데, 아무래도 난 쾌락주의자인거 같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진정 듣고 싶은 말 역시 '서호건? 너 진짜 완전 쾌락주의자다'라는 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멘탈 쾌락주의자(정신적 쾌락주의자)". 더 세분화하면 "찰나적 멘탈 쾌락주의자"!
과연 서호건을 쾌락주의자 라고 하는 것 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는가? 난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누군가 알고있으면 귀뜸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난 변질된 에피큐리언들의 쾌락주의를 말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들은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저 음식, 명예, 재물, 여자 등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쫓아다녔던 이들이고...
나는... 에피쿠로스(그리스 철학자)의 사상에 가까운 쾌락을 추구한다. 엄밀하겐 난 나 스스로가 독자적으로 체계를 잡은 나름의 쾌락적 수단과 기준이 있고, 특정 사상에 종속되진 않았다. 그래서 가까운이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나랑 비슷한 관념을 가진 대표적 사상이기에...
특히 우리는 대체로 쾌락이라는 어휘를 부정적 요소로 많이 인용해서 쾌락을 탐닉한다고 하면, 일단 이건 뭐가 옳지 않은 짓을 탐한다는 인식이 대부분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쾌락은 행복보다 한층 더 높은 단계의 관념이다. 행복은 불행과 고통과는 대조되는 가치이지만, 쾌락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다.
어쨌든, 나는 서호건식 "찰나적 멘탈 쾌락주의자"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한 나의 좌우명이 'Carpe Diem(Seize the day)'이다.
내가 추구하는 쾌락의 수단은 궁극적으로 '앎'이다. '지혜'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그냥 난 '앎'을 추구한다. 아느냐 모르느냐 둘중 하나다.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것은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것이다. 특히 내가 관심있는 대상을 몇 가지 꼽아보자면, 인간이란 종 자체(심리나 정신도 신기하지만, 육체의 신비는 더 경이롭다), 과학, 문학과 예술과 같은 것들이다. 이는 정말 나에게 흥분을 준다. 그 대상에 대한 '지식의 양'에 의한게 아니라 '그 신비함을 알아가는 과정' 소위 'Flow(몰입)'에 취해 나 자신을 돌보지 않을 정도에 이를 만큼 집중하기도 한다. 이게 내가 추구하는 쾌락의 본질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결과(성실함, 집중력, 의지력, 열정, 도전성)등은 나에게 있어서 지극히 부수적인 것들이다. 그렇기에 그런 것에 대한 평가는 나에게 별 감흥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한줄의 결과보다 전체의 기록을 좋아한다. 일기를 쓰는 것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것도... 나 자신의 삶의 과정을 즐기고, 그것 자체가 내 가치를 대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습관을 갖게 된 것이다.(그렇지만 분명하게도, 나는 과정을 바탕으로한 '결과론'을 믿는다. 모든 결과는 그 순간 이전의 모든 것들로부터 오는 것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나는 어떤 결과를 위해서 매진하는 경우는 없고, 단지 과정에만 충실할 뿐이다. 이는 부수적으로 결과라는 것을 낳고, 이 결과는 나의 과정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나타낸다. 목표라는 것을 세운다는 것도 단순하게는 결과만을 중시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현실에 충실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그렇다면 난 왜 그냥 "멘탈 쾌락주의자"가 아닌 "찰나적 멘탈 쾌락주의자"라고 했는가?
난 대개 뭐든 끝까지 제대로 잘 끝낸 경우가 많지 않았다. 중도에 방향을 바꾼 경우가 더 많았다. 어떤 것 하나에 몰입해서 완전 열심히 하다가 어느정도 알게되고 스스로 혼자서도 잘하게 되면 금방 실증을 느끼고 다른것을 찾아 떠난 것이다. 게임도 그랬고, 사람도 그랬고, 각종 활동에서도 그랬고, 이런 저런 다양한 분야의 공부들도 그랬고... 이는 물리나 생물학적인 측면의 '역치'와 유사하다. 처음에 난 그 대상에 대한 나 자신을 시험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과감히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쾌락을 얻어간다, 그런데 그 대상이 내것이 되었다 싶으면 처음만큼의 자극은 더 이상 쾌락을 주지 않는다. 생명체가 지닌 역치값도 어느정도 반복적 자극엔 무디게 되는 것처럼 지식의 자극은 매 순간 누적됨으로써 더 큰 호기심이 아니면 자극이 안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변덕적인 기질이 있는 것이다.
이 변덕적 찰나적 성향을 바꿀거냐?
바꿔보려고 했는데, 이건 바꾸는게 쉽지도 않은거 같고해서... 안 바꾸고 이용할 방법을 수 없이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기가막힌 길을 찾았다.
항상 모든 일에 열심히 하는 호건... 이라는 표현을 자주 듣는데...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열심히 하는 것은 내 의무가 아니라, 내가 자극을 얻으려면 질릴 틈을 갖지 않기 위해서 매 순간 바꿔가며 그 몰입도를 전체적으로 부풀리는 뭐랄까? 일종의 빠꼼함?ㅋㅋㅋ 그런거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나 스스로의 쾌락을 지속적으로 느끼고자 행하는 요령일 뿐이다. 나의 이 변덕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쾌락을 줄이지 않는 최고의 효율은 내가 할 수 있는 쾌락적 대상을 수시로 바꿔가며 반복적으로 몰입을 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서 나는 질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덕분에 다른 이들이 보면 참, 별걸 다 하려고 한다. 이런것까지 잘하려고 하냐? 뭐가 그리도 욕심이 많냐? 적당히 해라... 그렇게 다 잘하려고 하면 너만 힘들어... 이런 말을 건네는데...
그게 내게 즐거움을 주는데, 도통 그냥 앉아서 채 5분도 멍때리고 있을 수가 없는 천성을 어쩌랴 해소해야지... 그러니까 공부만 하면 질리니까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그래픽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시도 쓰고... 뭐 별거 있나? 100점짜리 작품 아니어도, 난 이러면서 하루 종일 행복하고 즐거운데...
난 자야겠다고 누우면 5분 이내에 잠들어버린다. 다들 신기해 한다... 근데, 하루종일 그렇게 쾌락을 추구하고 나면, 나중엔... 잠이라는 게을러보이는 쾌락도 찾아야함을 알기에... 그 시간도 본능적으로 충실하게 몰입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난 지금처럼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하루를 열고... 온 종일 찰나적 멘탈 쾌락주의자로 살거다.
어떻게 사람이 진짜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느냐고 많이들 묻는다.
난 물어본다. "그럼 진정 당신은 뭘 그렇게 하고 싶은지?"
특별히 꿈꿔온게 없어서 머뭇거리다가도 보통은 그냥 돈을 많이 필요로하는 활동들을 말한다.
그럼 난 또 물어본다. "진정하고 싶다면서 왜 지금 못하고 있는지?"
"돈이 있어야지... 하지"
"필요한 만큼 최대한 빨리 벌면 되지..."
"그게 말처럼 쉽냐? 그 돈 모으려면 몇년이 걸리고 그 사이에 뭘 해야하고, 뭐도 생길지도 모르고, 혹시 또..."
"그럼 진짜라는 말을 빼야지 그냥 해보고 싶다고 해야지... 희망사항은 뭐 어디까지나 희망사항 아니야? 운이 좋으면 하는거잖아, 그럼 그런 걸로 아쉬워 할 필요가 없지... 넌 지금 너 스스로의 욕구에 충실히 잘 살고 있는거야 지극히 잘... 그 돈을 벌기 위해 정말 죽을정도의 고생까지는 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잖아, 그럴바에야 지금처럼 사는게 훨씬 낫다고 여기겠지... 그러니까 결국 고생 안하고 싶다는거 아니야? 그렇다면 지금 네 삶이 딱 너가 하고 싶은걸 제대로 하고 살고 있는 거야... 그리고 설령 못해봐도 손해보는건 아니잖아. 그런 걸로 스트레스 받지마~ 난 단지 그걸 안하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서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최대한 그걸 하기 위해서 내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 뿐이야... 다른건 없어... 난 다른 건 못 해봐도 되고, 다른 일 생겨도 상관없거든... 다른 것들이 나에겐 희망사항일 뿐이지~ 고생? 내가 죽어도 꼭 얻고 싶단 걸 주겠다는데, 죽기직전까지의 고통 쯤은 괜찮은거 같아 아직까진^^;"
결국 지금의 우리 모습이 스스로가 진정 바라는 쾌락을 수위다. 나쁘게 말하면 흔히들 "한계"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보호하는 망토다. 하지만 이 세상엔 결코 '한계'란 없다. 그건 지극히 정상적인 삶의 태도다. 언제나 그들은 옳다. 단지 그들은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이 추구하는 쾌락을 그정도까지의 가치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희망사항일 뿐... 필수불가결한 사항이 아닌 것이다.
고통받기 싫지 않는가? 고통받는 것과 성취에서 얻는 희열을 견주어볼 때 그 고통이 더 크다고 느끼지 않는가? 그래...
그럼 당연히 그 고통을 감수하지 않아야 하고, 당신은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나약하다고 여길 필요도, 열등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단지 자신이 그런 식의 쾌락을 추구하지 않았을 뿐이기니까... 옳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식이 상대의 사회적 지위를 통해서 인격적 상하평가 자체를 무의미하게 한다. 그래서 나에겐 누구나 다 평등해보이고, 다 무한해보인다. 다만 희망사항에 대해 좌절감과 그것을 세상의 탓으로 돌리는 비겁한 자들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그들은 나 같은 쾌락추구자들이 감수하는 고통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례한 인식인 것이다. 그건 때때로 날 화나게 한다. 우리 삶 자체를 함부로 난도질 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한 없이 비겁한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우리를 깎아내리려 하니까...
나도 항상 고통스럽다. 모든 걸 잘하려고 잘해보려고 한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가...
하루 24시간을 매 순간 질적으로 다른 긴장감을 바꿔서 맛봐가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게 얼마나 잔인한 자학행위이겠는가?
허나 나에게 만큼은 그것이 고통임과 동시에 자위행위다.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매 순간의 성취감은 도리어 그런 고통을 잊고 또 다른 고통을 쫓게 할만큼 짜릿한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건 바로 난 정말 운이 좋다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쾌락을 가치가 다행히 내가 살아있는 21세기에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삶에 있어서 크게 모가 나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의 패러다임자체를 선택할 권리가 없다. 이건 운인 것이다. 과연 내가 유목생활을 하고 항상 천적과 싸워서 생존을 지켜야하는 현실 속에 태어나서 이런 쾌락성을 추구하고자 했다면,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불가능했겠지... 차마 감수해야할 여러 측면의 개인적 사회적 고통이 그것으로부터 얻는 쾌락에 비해 지나치게 너무나도 컷을테니까...
다행하게도...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해서, 너무도 진심으로 감사하게도...
내가 '앎'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쾌락을 줄 수 있음과 동시에 남들... 즉 이 일류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나로하여금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Win-Win'을 추구하는건 정말 쉽지 않다. 많은 조건이 쌍방 모두를 만족시킬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한쪽의 노력으론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류가 나에게 선물한 이 현실적 패러다임과의 'Win-Win'의 조건을 너무도 감사히 여기며... 나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하지 않음과 동시에 최대한 해줄 수 있는 한도내에서 인류에게 배려를 해주고자 항상 세상에 애정을 쏟고자 힘쓰는 것이다.
호건~!
오늘도 Carpe Diem...
세상아... 우리 잘해보자! Go!
특히... 나에겐... '앎'과 더불어... 'LOVE' 역시... 내가 관심있어하는 또 다른 큰 영역이라는 점을 언급하지 못했다.ㅋ
어쩌면... '앎'은... '인류에 대한 관심' 이는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