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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 좋아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콘티와 각본 그리고 프로듀서를 담당했다는

"귀를 기울이면(耳をすませば, Whisper of the Heart, 1995)"이라는 작품에서 이런 글이 나온다고 한다.


이유가 없어도 만나는 사람은 '친구'

이유가 없으면 만나지 않는 사람은 '지인'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내겐 좋은 친구들이 있다. 이유가 없어도 그냥 그냥 그냥 만나는 친구들...

늘 보고 싶지만, 못 보아도 든든하고,

모처럼 수 개월만에 만나도 어제 헤어졌던 것 마냥 바보처럼 웃고 떠들게 되는 친구들...

물론 이 친구들 속에는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이도 꽤나 적은 이도 섞여 있다.

뜻이 통하는 이들과 나이를 떠나 서로의 벗이 되는 망년지교(忘年之交)를 맺어왔다.


더불어 이유가 없으면 만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내 삶엔 많이 있는 거 같다.

물론 그들도 무척이나 내겐 소중하고 고마운 지인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나와 그들의 사이를 '친구' 또는 '지인'의 관계로 나뉘게 했을까?

이는 말로써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선명하진 않은 거 같다.


이런 흐리멍텅한 감정은 최근 노자(老子) 철학을 다시 공부하면서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

정말 우리의 삶에 중요하고 분명한 무언가들이 도저히 언어로써 표현될 수 없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는 것.


나는 아주 오래도록 언어의 한계와 이성적 사고의 한계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내가 대학교 신입생 시절에 이 주제에 놓고 서울대 문과 출신의 선배와 열띤 논쟁을 한 적이 있다.

화두는 "우리의 이성적 사고는 언어에 지배를 받는가?"였다.

물론 토론이 열뗘감에 따라 소주 병도 쌓여갔던 탓에 막판엔 서로 횡설수설하게 되었지만...

당시 그 형님이 내게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읽어보면 깨닫게 될 거라고 얘기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형님은 내가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뜻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에 굴복하길 원했던 것 같다.

아마도 논쟁이 되었으려면, 나는 선배의 주장과는 반대로 우리는 언어를 뛰어넘는 사고가 가능하다고 주장을 했었을 테지....


참고로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주장했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논리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없다: 이러 이러한 것은 세계에 있으나 저런 것은 없다 이는 마치 우리가 어떤 특정한 가능성을 제외시키는 것을 전제로 할 수 있으며, 이것은 마땅한 경우라고 볼 수 없다. 즉 논리가 이 한계를 다른 측면에서 관찰해 본다면 논리는 세계의 한계를 벗어나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사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또한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린 언어화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세상의 흐리멍텅함을 보고 듣고 느낀다.

가을 하늘 뉘엿뉘엿지는 불그적적한 저녁노을을... 어찌 언어로 다 담아낸단 말인가...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보고 감탄할 수 있지 않는가?

심지어는... 단 한번도 본적도 없는 소설 속 수 많은 풍경들을 읽으며 각자 상상해내지 않는가?


나는 이 시점에서 노자 1장을 인용해보고자 한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고상무욕 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故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차양자동 출이이명(此兩者同 出而異名)

동위지현 현지우현(同謂之玄 玄之又玄)

중묘지문(衆妙之門)


이 문장에 대한 해석은 학자들마다 매우 다르게 보는 경우가 있으므로, 독자가 개인적인 판단을 해야한다.

몇몇의 해석의 예들은 다음과 같다.
http://egloos.zum.com/cheshires/v/582871

http://www.allinkorea.net/sub_read.html?uid=23493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5AZV&articleno=141&categoryId=20&regdt=20161007034400


나는 그냥 쉽게 말해서,

우리가 무언가를 언어를 통해 한정 지으면 그것은 곧 그 안에 갇히고,

그 본질이 그 언어를 뛰어넘을 수 있음에도 그 점을 헤아리지 못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우리가 무언가를 컵이라고 지칭한다면,

우리가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그 컵으로써의 기능만을 기대하게 될 뿐

어쩌다 밧줄을 끊어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 칼이 없어서 못 자르고 허둥지둥하고 있을 때

책상 위에 놓인 컵을 깨뜨려 생긴 조각으로 그 밧줄을 자를 생각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컵에 대해 이해하고 있고 기대하고 있는 용도는

지극히 제한적이어서 실제로 세상에서 이뤄질 수 있는 수 많은 가능성 중에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컵을 컵이라고만 본다면,

우리는 컵이라 불리우는 그 물건 자체가 지닌 가능성을 창의적으로 발휘하기 어려워지며,

그 물건의 용도가 암묵적으로 개개인의 이성적 또는 경험적 수준에 제한할 수 있고,

이는 결코 그 대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활용이라 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다소 거칠게 얘기하자면,

우린 조금이나마 더 빠르고 편하게 살고자 "언어"라는 이성적이고 개념적인 도구를 통해,

세상 만물을 단순화 시켜 상호 의견 전달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고자 함에 불과하다고 본다.


인간에게 있어서, 언어는 생존을 위한 도구이며 동시에 장난감인 것이다.


이제 다시 말로써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선명하진 않은 오늘의 화두로 되돌아 와보자,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나와 그들의 사이를 '친구' 또는 '지인'의 관계로 나뉘게 했을까?

분명 그 결과가 빚어짐에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돈과 권력, 외모 등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보는 다양한 인간에 대한 감각이 있기 때문이고,

그러한 감각의 예민함과 둔함은 사람들마다 그리고 나 역시 시시각각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에... 뭐라 딱 잘라 단정할 순 없다.


이러한 생각은 주관적으로 볼 때,

정말 말도 안되거나 또는 옳지 않거나 또는 미쳤다고 볼 법한 인간관계를 맺는 이들을 바라봄에 있어서

그들을 옹호하진 않아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나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마주한 이 커다란 혼란을 이해함에 있어서,

'누가 누군가와 왜 관계를 맺었는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관계를 이용하여 어떤 문제가 발생하였는지에 주목해야한다고 본다.

누구나 자유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권리는 있다고 본다.

앞서 말했다시피 사람이 사람을 만나 어울리는 것에는

감히 우리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아득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누구도 함부로 그 관계 자체의 가치를 논할 수 없다고 본다.


국민의 분노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을 넘어

자칫 사람과 사람의 관계맺음 자체에 대한 비난으로 번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는 훗날 도리어 우리 모두의 인간관계에 대한 아주 위험한 공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추계 학회를 다녀오면서도 느꼈다.

결국 우리는 사람에 울고 사람에 웃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

지인들과 친구들 덕분에 울고 덕분에 웃으며... 더불어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

불현듯 그저 내 곁에 그러한 지인들과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최근 주변에 많은 지기지우들이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있다. 그들 앞에 차마 나의 어려움들을 오롯이 터놓지 못한다.

아직 나는 그들보다 더 견딜만한 상황이기에 그럴 수 있는 거 같아서, 오히려 더 미안하고 또 안쓰럽다.

나도 힘들다고 어렵다고 고되다고 투정부리고, 의지하고, 울고 싶지만...

그러기엔 우리 친구들이 버텨내는 하루하루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같아 꾹 참고 또 하루를 연다.

아직 나는 한없이 부족하다. 아직 나는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다듬어야 할 것도 많다.

주저앉아 울부짓기엔 너무 훌쩍 커버렸고, 게다가 여전히 건강하고 창창하다.


친구들의 아픔과 고됨을 어루만지며, 나 또한 위안을 얻는다.

이 세상 살아가는 것이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나만 어려운 게 아니구나...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참으로 구슬땀 흘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구나...


우리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 닮았다면,

비록 서로가 지금 처해 있는 곳이 다를지라도

시나브로 서로에게 가까워져가고 있음을 떠올리며

그들의 아름답고 따뜻한 열정을 더욱더 닮고 본받고자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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