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전공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학문에 타고난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늘 그래왔듯, 그저 바보처럼 무식하게 요령도 없이 공부했을 뿐이다.
단지 몰입하는 깊이가 남다르게 깊을 뿐이다. 때론 지나치리 만큼 맹목적으로 몰입한다.
그래서 할거면 제대로 하고, 그게 아닌 대충 할거라면 애시당초 하지 않는 게 나다.
진로를 놓고, 오랜 시간 생각을 했다 다시 했다 또 다시했다.
사실 생각을 연이어 깊이 있게 하진 않았다. 시간을 두고 그 문제에 대해 차차 느껴지는 바를 깊이 느끼고자 했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느꼈다. 드디어 오랜 침묵 끝에 내게 들려오는 단 한마디.
가라.
흔들리지 말고, 가라.
실패를 두려워 말고, 가라.
정상에 오르지 못오를까 걱정하지 말고, 가라.
지난 겨울 한달 내내 산을 타면서 나는 배웠다.
산에 정상에 오르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한낱 추억의 한조각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을.
남들에게 나 정상에 올랐노라 자랑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산행임을...
산을 오르며 산새를 즐기고, 경치를 음미하고, 산의 굽이굽이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로움 그리고 그 신선함을 즐기는 것이야 말로 참된 산행임을 배웠다.
산은 각기 다르다. 그리고 어느 산이 좋다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어느 계절엔 어느산이 좋고, 어떠한 날씨엔 또 어느 산이 좋고, 어떠한 건강상태엔 또 어떠한 산이 좋은 법. 산에 대한 평도 이리 다변적인데, 어찌 이 산이 좋다, 저 산이 좋다 하겠는가?
결국 우리의 삶도, 어떤 삶이 더 좋다, 더 나쁘다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연예인의 삶의 좋아보이는가? 대학교수의 삶이 좋아보이는가? 대기업 사장의 삶이 좋아보이는가?
모든 직업은 사람에 성격과 운과 능력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두가 CEO가 될 이유도, Global Leader가 될 이유도, 공부잘하는 전교 1등이 될 이유도 없다.
그럼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난 이 사회에 어두운 곳에 빛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다짐했었다.
하지만 최근 잃어버진 자신감과 우울감 그리고 이어진 만성적 나태와 무기력이 내 꿈을 덮어버렸었다.
그리고 흔들렸다. 정처없이 흔들렸다. 정말 망망대해 위에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삶의 지향점을 잃고 난 이에 마음엔... 바라는 것도 없고, 두려운 것도 없다.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게 무서운 것이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 지난 며칠 메카트로닉스 프로젝트를 하며 2주간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일에 밤잠을 설치며 매달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친구들까지 불러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난 느꼈다. 내게 아직 열정이 있음... 용기가 있음을...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난 달릴 자신이 있음을...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겠다. 이젠 고민할 것도 없다.
다시 가겠다. 로봇 손 분야에 내 인생을 걸겠다.
내게 주어진 삶이 그 길이 아니고서는 아무런 즐거움을 주지 않음을 난 느낀다.
내가 지금 꿈꾸는 살은 학자의 삶도 CEO의 삶도 엔지니어의 삶도 아니다.
그저 로봇 손 분야에 내 능력을 조금이나마 어떤 식으로든 보태고자 할 뿐이다.
내가 가진 능력은 미약할지라도 내 생을 걸고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그 분야를 위해서 나를 바치겠다.
내 생의 소명은 그러함으로써 인류를 조금 더 밝게 빛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 뿐이다.
포기하지 않겠다.
방법을 찾겠다. 하면 된다. 되게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낼 거다.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