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건2006.06.28 11:05
사람들은 모든 것을 바꾸길 원한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변함 없이 지속되길 바란다.
-> 변함없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놓고 지루함을 무료함을 느끼는 것은 왜인가? 그런 모습... 그렇다면 변함없음을 원하면서도 변화를 기다린다는 것인가...? 이런 모순이 또 어딨는가???

'파는 물건의 값을 깎아주는 사람은 분명 돈이 절실히 필요해서 그럴겁니다. 그런 상황을 이용하는 것은 뭔가를 생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의 땀과 노력을 멸시하는거나 다름 없습니다.
-> 아빠가 옳았다. 그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멸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에 비하면 나는 위선자였다.

"성공하고자 할 때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여 당신이 원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도록 하십시오. 어느 누구도 눈을 감고 표적을 맞출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바보가 있다. 위협받는다고 해서 어떤 일을 포기하는 바보와, 타인을 위협할 수 있다고 해서 어떤 일을 하려드는 바보.'

가장 좋은 친구들을 버리는 몹쓸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남게 되니까요...
-> 그렇다면 가장 좋은 친구란 무엇인가?
-> 천국에서 악을 악으로만 바라보는 건 선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단 말인가?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면서...ㅋㅋㅋ

* 용서... 면죄... 이런게 결국 인간을 나약하게 만든는 거야
기독교에서 아무리 선을 외쳐도 '악' 뒤에 '선'으로 "용서"라는 두글자로 죄를 감싸기에 무고한 희생이 생기는거야
속죄로 참회로 살아도 잘못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미 상처는 찢어졌고, 완전히 흉터없이 아물수는 없는 것이다. 설령 외적으로는 티가 안나도, 당사자의 기억속 가슴속에는 선명하게 남아있을테니까...

그는 지혜를 얻고자 했지만, 전혀 정치적이지 않았고, 공정하고 했지만 전혀 지혜롭지 못했고, 정치적이고자 애썼지만 늘 소심하게 행동했다.

선이 이 마을 사람들의 가슴에 가 닿기 위해서는 악이 그 모습을 드러내야만 했던 것이다.
-> 욥과 예수의 관계는 무언인가?

'악이 모습을 드러내야 사람들이 선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어'
-> That's right!

그 금이 베스코스에 과거의 영화를 되돌려 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자신에게 돌아와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몫의 부를 탐하고 있을 뿐이었다.
'반대합니다'하고 말할 용기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옥... 멀리서 보면 아주 아름다워 보이지만 끔찍한 곳이죠.

고향은 그녀에게 언제나 사랑을 되돌려주지는 않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대가를 버리고 사랑하는 것은 시간낭비와 다름없으니까...

그로테스크하다!?

그가 해명한다 하더라도, 범죄를 사주하는 사람의 말은 결코 믿을 수 없으니까요.

모든 것이 통제의 문제, 그리고 선택의 문제일 뿐, 다른 그 무엇도 아니었다.

삶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지. 모든 것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달려있어.

살 날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낭비할 시간은 조금도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삶은 우리를 난관에 봉착시켜 우리의 용기와 변화의 의지를 시험한다. 그럴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하거나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슬그머니 달아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도전은 기다리지 않는다. 삶은 뒤돌아 보지 않는다. 일주일, 그 정도면 우리가 운명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 문득 경영대의 스카웃제의를 거절한게 후회된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시간 뒤돌아 보지 않는다. 삶이 그러한 것 처럼...

------ 파울로 코엘료의 「악마와 미스프랭」를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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