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G: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장영희)
Ø 링컨 “Uncle Tom’s Cabin, 1852, written by Harriet Stowe”를 읽고 노예 해방 결심 => 남북전쟁이 북쪽의 승리로 끝나고 노예가 해방되자, 링컨 대통령은 해리엇 스토 부인을 만나 “당신이 바로 그 거대한 전쟁의 원인이 된 작은 여인이시군요”라고 했단다. 남북전쟁은 실은 그녀의 문학작품에서 시작되었고, 그 결과 전쟁을 통해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어 인간임을 확인 받았단다.
Ø “애지욕기생(愛之欲其生)”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살게끔 하는 것이다. – 논어
Ø 오늘날 나를 존재하게 한 것은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이었다. 나에게는 하버드 졸업장보다 독서하는 습관이 더 소중하다. – 빌 게이츠
Ø 삶은 조각 퍼즐 맞추기 같은 것입니다. 지금 들고 있는 마음의 조각이 여러분 삶 전체의 그림 중 어디에 속하는지는 긴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조금 아파도, 남보다 뒤떨어지는 것 같아도 바로 그 경험이 훗날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부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은 자신의 꿈을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할 때 제일 행복합니까?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 영혼을 채우기 위해 탐험하고 싶은 분야는 무엇입니까? – p.105
Ø 흑인 여성 최초로 미국의 일류대학인 스미스 칼리지의 총장이 된 ‘루스 시몬즈’는 자신의 성공비결에 대해,
“나는 어려운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별하고자 노력햇습니다. 어려워도 가능해 보이는 일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승산이 없다고 생각되는 일은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계획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할 때 실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보다는 최선을 다해 이룰 수 있는 꿈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일부터 최선을 다해 이루어야 합니다. – p. 106
Ø 미국의 유명한 경영대학원에서 한 교수님이 시간 쓰는 법에 대해 특강을 했습니다. 교수님은 항아리 하나를 탁자에 올려놓고 주먹만한 돌들을 집어넣기 시작했지요. 항아리 위까지 돌이 차자 교수님이 물었습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네.”
이번엔 항아리를 흔들어 가며 자갈을 채웠습니다. “이제 가득 찼습니까?” 학생들은 다시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교수님은 다시 모래를 가득 붓고 물었습니다.
“이제는 가득 찼지요?” “네.”
그러자 교수님은 물을 항아리에 가득 부었습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보여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학생 주의 하나가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스케줄이 꽉 찼다 해도, 언제든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닙니다.” 교수님은 대답했습니다.
“항아리에 자갈이나 모래를 먼저 집어넣으면 큰 돌은 결코 집어넣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큰 돌, 즉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우선적으로 여러분의 항아리에 집어 넣으십시오.” – p. 111
Ø 내가 살아 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라는 것입니다. 명품 백에도 시시한 잡동사니가 들었을 수 있고 비닐봉지에도 금 덩어리가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내가 그런 말을 해봤자 쉰 살 별종이 주책없이 남의 일에 끼어든다고 욕이나 먹겠지요. 하지만 내가 살아 보니까 그렇다는 말입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남들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 내리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중요하지 않는 것을 위해 진짜 중요한 것을 희생하고, 내 인생을 조각조각 내어 조금씩 도랑에 집어넣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스무 살 때는 쉰 살 어른들이 겉모습, 즉 어떻게 생기고 어떤 옷을 입느냐가 아니라 단지 마음이 중요할 뿐이라고 말할 때 나도 코웃음을 쳤습니다. 자기들이 돈 없고 못생기고 능력 없으니 합리화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입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텔레비전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을 대해 덕을 쌓는 것이 결국 내 실속입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습니다. 내가 남의 말 듣고 월급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한 것은 몽땅 망했지만, 내가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데는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데는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데는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데는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 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습니다. 사람은 단지인人에서 끝나지 않고 인간人間,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어야 그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 p. 122
Ø JH’s Comments
n 항상 모든 대상에서 배움을 얻고자 노력함
n 선택과 집중
Ø YS’s Comments
n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서 이성을 만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좋아해서 만나서 덕분에 외로움이 덜어지면 좋은 것이지,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봄.
YS: “파우스트 2부” (괴테)
Ø 너무 어렵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결국 3주 반에 걸쳐서 읽었다. 2부의 결론에서는 그레첸의 용서는 정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음
Ø 파우스트가 황제를 만나며, 권력에 눈을 뜨고 황제의 요구에 따라 희랍신화의 미의 여신 헬레나와 미남의 신 파리스를 매우 위험한 도전을 통해 보여줌. 그러다가 파우스트가 헬레나에게 반함. 메피스토펠레스가 변장을 해서, 의도적으로 파우스트가 헬레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함. 그 후에 파우스트는 왕이 신분으로 헬레나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데, 그 어린 아들이 파우스트를 닮아 욕망이 크고 헬레나의 미를 닮아 잘생겼지만, 스스로의 높은 기대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식은 자살하고 후에 헬레나는 죽은 자식의 곁으로가 가고자 지하세계로 돌아감.
Ø 파우스트가 전쟁을 승리하여 왕이 되어 이상이라고 생각한 간척 사업을 진행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면서까지 이상을 지향한다.
Ø 네 명의 여인 “근심, 결핍, 죄악, 곤궁” 등장하여, 혼란을 빠뜨림. 그녀들의 오빠가 “죽음”. 오직 ‘근심’만이 파우스트에게 파고 든다. ‘근심’이 파우스트의 눈이 멀도록 한다. 파우스트가 죽자 천사가 그를 데려가고자 내려오자, 메피스토펠레스가 천사를 보며 반하고,그 사이에 파우스트가 구원을 받는다.
☞ Q. 그렌체는 스스로의 죄를 모든 인정했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도 있다만, 이렇게 죄를 많이 짓고도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지 파우스트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u 얼마든지 나쁜 짓을 하더라도, 자기실현을 추구했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 이는 당대의 낭만주의적 관점과 일치하다.
u 1부의 그렌체와 2부의 파우스트의 구원을 통해, 괴테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의 삶엔 두 가지 구원의 방법이 있음을 보여주었고, 당신은 어떤 길을 택하고자 하는가를 묻고 있다.”
Ø 파우스트 왈,
: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중략)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더불어 살고 싶다. 그러면 순간에다 대고 나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Ø 천사 왈,
: “단, 구원은 ‘언제나 열망하며 노력하는 자’에게만 해당되니, 대문호 집에서 뭐 주워갈 생각이랑 접고, 죽을 때까지 열심히 쓸 것”
Ø Anonymous Comments
n 이 모든 논의는 ‘신’과 ‘구원’이라는 종교적 의식이 있어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종교적 가치를 현실로 투영시켜보면, ‘구원’은 ‘용서’에 해당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Ø JH’s Comments
n 6.25 전쟁에 유엔군이 참전에 대한 비화
: 소련의 불참에 의해 안보리 결정을 비법화할 수 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알 수 있듯이 안보리 결정은 결코 ‘비법화’되지 않았고 반대로 소련의 불출석으로 인해 ‘합법화’되었다. 북한의 무력공격을 ‘침략행위’로 선언(6월 25일)하고, 미국에 최고지휘권을 위임하여 유엔군의 파견을 결의(7월 7일)한 안보리의 결정은 - 소련의 참석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 결코 ‘비법화’되지 않았다.
n 일부다처제가 옹호되는 것은 가구당 세금 수입 감소의 우려와 국정운영의 복잡화를 방지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Ø HG’s Comments
n 여기서 언급되는 모든 세속적인 요소들이 악이라는 전제로 보고 있는 거 아닌가? 과연 권력과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악한 일인가?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선은 무엇인가?
n 괴테가 이 작품을 통해, 기독교주의적 ‘선-악’의 이분법적 관념과 현세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을 하고자 아니었을까?
n 선하던 ‘파우스트’가 악마의 유혹에 힘입어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지만, 스스로의 죄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믿는 가치관을 추구하였기에 결국 구원받았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모두 그러한 죄를 짓고 있고, 그 죄에 대해 깨달으면 깨달은 대로 반성하여 용서를 구하고, 그렇지 못하면 스스로의 죄를 자각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한다고 본다. 따라서, 감히 타인의 삶에 대한 선-악의 재단은 의미가 없으며, 그보다 본인 스스로가 믿는 가치관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인간다운 삶임을 말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낭만주의가 이성과 합리, 절대적인 것에 대한 거부한 사조라는 라는 점에서, 만약 괴테가 당대 낭만주의에 영향을 받았었다면 사회 통념이 아닌 스스로의 소신에 충실한 삶의 방향을 지향하자는 계몽주의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것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Ø 파우스트는 현시대에 황우석이나 히틀러, 김정일에 투영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본다.
Ø 대사들 하나하나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꼭 기회 되면, 다들 한번 읽어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