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부득이하게 되도록이면 입에 담고 싶지 않은 얘기들을 쏟아냈다.
사람이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수의 여파가 수습불가능할 여지가 있을 땐...
그 책임에 대한 문책은 실랄해야한다. 결코 그러한 잘못이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깨진 유리를 쓸어담는 일은... 컵을 애지중지 아꼈왔던 이에겐 가혹한 것이다.
깨는 건 쉽다. 그러나 다시 붙이는 것은 어렵다.
화내는 것은 쉽다. 그러나 진정 깨우치게 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고 난 뒤에 마음이 뒤숭숭해서 운동을 하며 현실의 고뇌들을 애써 잊어보려 했다.
그래도 자꾸 차오르는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괜한 걱정들과 얼키고 설킨 이해관계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러다 문득... 한 후배가 이번 주에 시간 봐서 술이나 한 잔 같이 하고 싶다는 얘길
여러가지로 정신없던 12월 막바지에 헐떡이던 내게 넌지시 내게 했었던 것이 떠올랐다.
사실 요즘 내가 후배들에게 술 먹자는 얘길 잘 안 하는 편이다. 그런데 불현듯 잘 안하던 술 한잔 할래? 하는 콜을 하고파 졌다.
뭐 이런 저런 얘기들을 좀 들어보고 싶은 마음 안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면서 알았다. 그 후배도 운동을 갔던 터였단 걸...
아마 지금쯤은 집에 있을 거 같단 걸... 그리고 여지 없이 내 예상은 역시나 맞아떨어졌다. 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전화를 끊는데...
터턱... 내 휴대전화가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제...엔장...
사실 자주 떨어뜨리는 편인데, 다행히 지금까진 휴대전화를 떨어트려서 액정을 깨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떨어질 땐, 느낌이... 아이쿠... 이번엔 무사하지 않을 거 같다는 예상이... 생애 처음으로 나의 뇌리를 스쳤고...
그 예상은... 공학박사를 접고, 이태원에 돚자리를 깔아야 할 만큼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렇다... 처음으로 내 폰 액정이 나갔다.
노트 5를 사고 싶다 사고 싶다 근래에 노래를 불렀으나, 정말 꼭 사야할 만큼 큰 필요성을 느낀 건 아니었다.
지금 쓰는 노트 3도 충분히 잘 쓰고 있었다. 다만, 노트 5의 쉽게 펜을 빼고 넣는 기능과 뛰어난 카메라 화질이 탐났을 뿐이다.
이젠 정당하게 폰을 바꾸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내심 감사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집에 들어와서 동생과 이런 얘길 주고 받다가, 그냥 노트 5로 교체하러 집 근처 대리점을 향해 집을 나섰다.
그런데... 밤 10시 30분을 넘어가는 시각... 역시나... 또 예상대로... 문이 닫혔다. 정말 돚자리를 깔아야 하려나 보다.
터벅터벅 고갤 푹 숙이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발 앞에 두툼한 자주색 여성용 지갑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아이쿠... 냅다 주웠다. 그리곤 이리저리 주윌 둘러보았다.
차가운 바람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겉옷을 꽉 여맨 채 일분 일초라도 더 빨리 실내로 들어가야한다는 강박에 휩싸인 듯 경주마들 마냥 앞만 보며 탈탈탈 총총걸음으로 엇갈려 가는 사람들의 옆 모습들만 지나쳐갔다.
"어이~" 누군가 내 등 뒤에서 멀뚱멀뚱 홀로 서 있는 나를 향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획 하고 돌아보니, 조그마한 복권가게 주인아저씨가 30인치 모니터쯤 되는 창문으로 고갤 내밀며,
그 지갑 자기가 찾아줄테니 맡기고 가라는 거였다.
그 간절한 요구에... 나의 육감은 내게 숨죽여 예언을 했다.
저 분에게 맡기면... 이 지갑은 결코 주인에게 가지 못할 거라고...
그리고 나는 오늘 연속적으로 나의 직감이 맞아떨어진 현실을 근거로, 샐리의 법칙을 떠올리며...
그래 이 지갑은 귀찮아도 파출서에 가져다 주자~ 하며 시린 두 손가락으로 어정쩡하게 마치 오물 묻은 휴지를 집는 자세로 지갑을 들고서 동네 파출소를 향해 걸었다. 행여나, 지문이 이리저리 묻어서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정말 시리더라... 장갑을 꼈어야 했는데, 동생과 어머니와 셋이서 통화를 하면서 이동하느라 그러지도 못 했다.
파출소에 도착해서, 경찰에게 어디서 주웠다며 드리고 돌아서는데...
"저기요~ 잠시만요. 여기 절차가 있습니다."
뭥미...!? 주운 지갑 찾아달라고 가져다 줬더니 무슨 놈의 절차?
정작 나는 열어보지도 않았는데, 내 앞에서 지갑을 열어보이더니...
"자 보세요~ 한화로 000원이 들어 있죠. 중국 돈도 000위안이 들어 있네요. 확인해주세요~ 맞죠?"
네... 네... 그러네요... 그런데 그걸 왜 제가 확인해야하는 건지...
"성함과 연락처 적어주세요."
오노... 뭐 이런 거까지 알려줘야하나... 남 좋은 일 하러 왔다가, 괜히 이상한 취급 받는 거 같아서... 기분이 별로였다.
절차란다. 찾아주면 연락주겠단다.
그리곤 30분 후에 샤워를 마치고 나온 사이에 전화가 두 통 와 있었다.
통화를 걸어보니, 예상대로 파출소였고 잘 찾아줬단다.
자... 오늘 일의 핵심은...
나의 액정이 깨졌다. 생애 처음으로... 그것도 모처럼 평소에 잘 하지도 않던 후배에게 술 한잔 하자는 전화를 걸고 난 직후에...
솔직히 순간 괜시리... 사람이 안 하던 짓을 갑자기 하면... 이런 화를 당하는 건가... 싶은...
정말 말도 안되는 논리적 비약과 황당스런 억지 인과관계를 정립하고 있었고...
에라이 모르겠다. 2016년 액땜했다는 샘 치고~ 이참에 원했던 대로 폰 바꾸자며 나갔다가,
또 생애 처음으로 남의 지갑을 주웠다. 그리고 그 지갑을 결국 주인에게 온전히 돌려줬다.
그리고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아주 오래전, 고속버스에 정말 아끼던 예쁜 우산을 깜박 잊고 차에 놓고 내린 날...
비가 왔고... 우산이 없는 누군가의 손에 그 우산이 들려질 운명일 것이다며 잃어버린 우산에 대한 실망감을 뿌듯함으로 환기 했던 일이 떠올리게 했다.
그렇다. 그 지갑의 주인은... 지갑을 되찾을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어쩜 그 분의 운명을 위해... 나는 체스판의 말처럼... 마치 내가 믿지도 않는 신이 나를 조종이나 하는 것 마냥...
평소와 다르게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고, 폰을 떨어트렸고, 액정이 깨졌고, 대리점을 다녀오는 길에, 지갑을 주웠다가, 경찰서에 그걸 맡겼던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누군가에게 지갑을 잃어버리고 다시 되찾는 것은
'내가 말야,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누가 경찰서에 가져다줘서 결국 찾았다!'라는 짧은 한 줄의 다행스러운 일이 되겠지만,
그 뒤에는 나 같은 사람의 눈물과 실망과 아쉬움과 시림과 당혹스러움과 괜한 뿌듯함과 사례금은 고사하고... 고맙다는 문자 하나 없는 것에 대한 괜한 꽤씸함ㅋㅋㅋ 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많은 것들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인연들의 엮임과 배려와 양보가 있기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2016년 액땜 이걸로 한 거다. 예상대로... 올 한해는 분명 대박날 거야ㅋㅋㅋ
일단 그 첫 단추로 새로 들어온 후배들이 참 괜찮은 친구들인 거 같아서 출발이 경쾌하다. 좋다~!!!
새해에는 이런 사람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법륜스님 희망편지 中)
욕심내기보다는 나누며 살겠습니다.
화내기보다는 자비롭게 살겠습니다.
어리석기보다는 지혜롭게 살겠습니다.
교만하기보다는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사치하기보다는 검소하게 살겠습니다.
미워하기보다는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의지하기보다는 의지처가 되겠습니다.
비굴하기보다는 당당하게 살겠습니다.
절망하기보다는 희망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새해에는 이런 마음으로 살아서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