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누군가는
정말 우리가 아는 그 누군가일까?
어쩜 우리가 보는 건 그의 지극히 일부가 아닐까?
그의 24시간을 함께할 수 없으며,
그의 지난 세월을 다 들여다 볼 수 없으니,
결국 우린 지금 우리 앞에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그를 제한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하물며 물건을 하나 택함에 있어서도
이리저리 살펴보고 브랜드에 가격까지 살피고
그 물건에 대해 알고자 하는데,
정작 우린 곁에 있는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다.
그가 어느대학 어느과 출신인지ㅡ
그가 지금 어떤 곳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ㅡ
그가 일년에 얼마나 벌고 어떻게 쓰는지ㅡ
그가 입는 옷과 타고 다니는 차가 무엇인지ㅡ
그러한 피상적인 것들을 물으며
마치 컵을 위에서 바라보듯 그를 바라본다.
그런 것들로 비춰보면, 그가 상대적으로
작고 별 볼일 없게 느껴질 수도 있고,
반대로 굉장히 대단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안목에선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다.
잘못된 건 없다. 그렇게 밖에 볼 수 없는 것일 뿐....
대부분 우린 서로를 그런 시선으로 보고 판단한다.
사실 누군가를 이해함에 있서서 그게 쉽고 편하다.
그래, 어디까지나 쉽고 편한 길일 뿐...
결코 제대로 잘 이해하는 길은 아니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
그것은 굉장히 섬세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컵의 옆모습을 보려면, 내 눈이 컵 옆에 있도록
나의 고개를 낮추고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보면,
속 빈 강정 마냥 소리만 요란한 깡통이거나
빛 좋은 개살구일 수도 있고,
반대로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거 이상으로
그는 참으로 깊고 멋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재밌는 점은 깊은 사람일수록
얼핏 봐서는 그럴 거라고 상상도 안된다는 거다.
굳이 내세우지 않았을 뿐,
굳이 드러내지 않았을 뿐,
굳이 나서지 않았을 뿐,
그는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가졌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더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서
그런 단편적인 저울질에서 자유롭고 싶을지도...
그가 기다리는 건, 그의 윗모습이 아니라
그의 옆모습을 볼 줄 아는 안목을 지닌 눈빛이다.
이미 그는 충분히 많이 느꼈다.
그의 윗모습만 보며 다가온 수 많은 손길이
진정 그의 깊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저 커보이는 그 컵을 좋아했던 것임을...
깊이를 알면 알수록 그윽하다는 느낌보다
그저 무겁다는 생각에 결국 놓아버린 그 손들을...
예를 들면, 이런거다~
말 잘한다고 좋아했지만, 정작 어떻게 그런
생각들이 나온건지는 애당초 관심이 없는 거다.
그냥 말 잘하는 앵무새가 좋았을 뿐~
어느날 앵무새가 피곤해서 말을 잘 안 하면,
그냥 버려지는 거다. 그 앵무새가 떠들어 데던
진지한 고민들의 기회비용은 고려대상도 안된다.
그렇게 우린 서로를 존경하거나 비아냥거린다.
그의 깊이가 아니라 그의 단면만 놓고서
너무 쉽게 누군가를 이해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바란다.
진정으로 나와 공감할 수 있는
그 누군가를ㅡ 그런 진지한 존재를ㅡ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갈망한다.
우리 주변에 그런 존재가 있느냐 없는냐가
곧 우리의 깊은 내면에 내재된
원초적 외로움을 채우느냐 못 채우냐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점은, 누구나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진지한 관심을 가진다면 말이다.
단순히 위에서 바라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찬찬히 옆에서도 아래서도 바라보다 보면ㅡ
차차 그의 깊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깊이에서 잔잔한 감동을 얻는다면,
분명 보는 이와 보여진 이의 외로움들은
두 사람이 켠 공감이라는 촛불에 시나브로 녹아내릴 수 있다.
누군가의 깊이를 본다는 건 생각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심 어린 관심과 애정으로 지긋이 바라다 보면, 그냥 뻔히 보인다.
우린 보통 그걸 '믿음'이라 부른다. 믿음은 마치 흙과 같은 것이다.
일단 믿음이 있어야, 거기에 뭘 심어도 심을 수 있고 또 키울 수 있다.
그게 우정이든ㅡ 사랑이든ㅡ 존경이든ㅡ 말이다.
허나 그 믿음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아무리 화려한 그 무엇도 쓰러지고 매마르는 것은 한 순간이다.
믿음을 가지는 것은 누군가를 제대로 알아가는 첫 단추를 끼우는 일이고,
믿음을 잃은 것은 애써 키워놓은 꽃밭에 흙을 없애버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누군가가 나를 믿는다는 것은,
곧 나의 윗모습 뿐만 아니라 옆모습, 뒷모습, 심어지 바닥까지 보고 듣고
진정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 믿음 위에서 우린 가장 우리다울 수 있으며
우리의 원초적 외로움을 충만한 행복감으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을만 하게 느껴지면 제대로 한번 믿어보라~
그 믿음이 곧 진짜 그를 만나는 열쇠가 될 것이다.
굳게 닫힌 그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믿음을 가지고 들어선 당신 앞엔
아무나 쉽게 볼 수 없는
참된 행복이 담긴 선물이 놓여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란 존재는 다름 아닌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애인일 수도, 우리의 꿈일 수도, 어쩌면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